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 최정 ㅣ 새소리가 들린다

2015-06-0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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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들린다. 삣쫑삣쫑 또르르르. 쪽쪽. 쪼록쪼록 짹짹 삐이삐이 . 온갖 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글자로 다 표현해내지도 못하겠다. 우리 집은 그저 평범한 주택가에 있는 그냥 그런 집인데 별빛 하나만은 유난히 밝다. 한 겨울, 쌀쌀한 밤에 나와 하늘을 올려 보면 정말 많이 보여 느닷없이 대단한 걸 소유하고 있는듯 행복해 진다.

새소리 역시 새벽부터 시끄러울 정도로 들리는데 어느 소리 하나 같은 게 없다. 이즈음은 스마트폰앱 이란 게 경이로울 정도로 발달해서 하늘의 별에다 대고 들여다보면 별들의 이름이 나오고 새소리에 대면 새 이름이 나온단다. 꽃에다 대도 이름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이즈음 나가보면 모든 인간들이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 들여다보느라 눈 맞출 길이 없는데 실상 그 많다는 기능중에 내가 정말 아쉬운 건 별로 없어서 스마트폰 중독 걱정은 안한다.


다룰수 있는 컴퓨터 기능이 그저 원고쓰고 이메일 보내는 수준인 내가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건 꽃 이름, 새 이름, 별자리 이름이 알고플 때다. 이즈음 시간이 널널하다 보니 동네 한바퀴 걸을 때도, 마당에 물주러 나가서도 마치 도시에 처음 나온 시골 색시마냥 사방을 두리번 거리게 되는데 어쩌면, 세상은 어쩌자고 이렇게 예쁜 걸까?

지난 봄, 서 있는 자리가 시원찮아서 십여년을 비실대는 단풍나무를 캐내 조금 나은 곳으로 옮기며 이게 살까, 걱정했는데 드디어 다섯 손가락 쫘악 피며 새잎이 나왔다. 아이고 이뻐라!

작년 겨울 몸보신 한다고 도라지 뿌리를 한 뿌리 남김없이 싹싹 다 패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나, 아주 도라지 밭이 되게 새순들이 많이 나왔네. 아이고 이뻐라! 동네 뒷산엘 갔더니 마치 왁스를 입힌 것처럼 반짝반짝 하는 꽃잎이 예쁜 노란 꽃이 길곁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 있다.

아이고 이뻐라! 대추나무 잎사귀는 금방 얼굴 씻은 어린애처럼 말간 모습으로 춤추둣 바람과 놀고있다. 아이고 이뻐라! 꽃이나 나무는 보이는 것이니까 당연하지만 새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바람소리, 물소리는?

학교에서 애들 가르칠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그 음악을 따라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느끼는대로 그림으로 그리라는 프로제트를 종종 주곤 했다.

그 추상적인 풀어놓음이 당혹스러워 엄청 부담스러워 하는 애들도 있는가 하면 별다른 자의식없이 음악의 흐름을 굵고 가는, 길고 짧은, 빠르고 느린 선으로 옮겨놓는 애들도 있다.

그림이란게, 아니 음악이나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어 좋기는 하지만 정답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사기 잘 치는 사람의 농간에 휘둘릴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건 안좋다.


죤 케이지(John Cage) 라는 현대음악가가 있다. 나는 음악에 전문 지식이 없어서 그의 음악세계를 평할 능력은 없지만 음악회를 열어놓고 연주가나 청중이나 모두 가만히 앉아 있는 음악회(?)도 하고, 아무튼 실험정신이 대단한 예술가 인 것 같은데 그가 그린 그림을 수년전 리젼오브 아트 에서 보고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하나도 힘주지 않은 흥얼거림 같다. 새소리 나면 흉내내 보고 아는 노래 귀에 들리면 그냥 따라 부르는듯 하다. 음악가로 알려져 있지만 한동안은 화가가 되려고도 했고 무용의 안무도 했다. 아마도 그는 쟝르를 넘나드는 예술가의 감수성을 타고 난 사람인 것 같다.

예술이 예술이란 이름으로 너무 힘주는 게 나는 싫다. 하나도 안 예쁜 옷을, 아니, 웃읍꽝스럽고 볼품 사나운 옷을 오직 새로운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디자이너의 명예를 걸고 런어웨이를 걷는, 쌀쌀맞은 얼굴로 찌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패션 모델들의 행진을 보는 것 같다. 우리 주위를 가만히 돌아보면 곳곳에 정말 놀랄만한 예술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흔연한 모습으로 늘쌍 곁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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