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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면역치료 (1)

2015-06-02 (화) 안상훈 / 암 전문의·엘에이 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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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기사에서 중국 탁구는 한국 양궁보다 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내용을 보았다.

중국 내 탁구 인구만 5,000만명이고 전문 선수만도 2,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가히 탁구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탁구 인구만 많은 것이 아니라 탁구 라켓이나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개발이 이루어져 타 국가들이 감히 뛰어넘기 힘든 독보적인 철옹성이 되었다.

암과 매일 전쟁을 하는 필자는 때론 암이 중국 탁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최근 새로운 치료제들과 방법들이 개발되어 전보다 치료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암을 연구하고 새로운 약을 개발하여도 암은 항상 한 발 먼저 앞서 가서 살아남는 무서운 적이다.

과거 수술, 방사선 치료 및 항암제에 의존하던 암치료는 최근 암에만 있는 비정상적인 신호전달 체계를 공격하여 암만 파괴하는 표적 치료제의 등장으로 치료 결과가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암은 한두 가지 표적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곧 저항성이 생겨 생존하는 방법을 찾는 끈질긴 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과 같은 치료방법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면역치료다.

사실 면역치료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1893년 뉴욕의 외과의사 윌리엄 콜리(William Coley)가 피부 전염병을 앓은 자궁경부암 환자가 암으로부터 호전되는 것을 보고 박테리아 배양액을 환자의 종양 부위에 주입하는 치료를 시도했으나 부작용이 심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 Burnet과 Thomas 박사가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암세포의 발생을 감시하고 인지하여 제거한다는 면역 감시체계(immunosurveillance) 이론을 제기했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등 외부물질이 들어오면 면역세포들이 이들을 공격하여 없앨 수 있는 항체나 사이토카인 등을 만들게 된다.


암도 우리 몸에 있지 않은 이물질이기 때문에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반응하여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면역세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암이 발병하는 것이다.

다양한 면역세포들이 있는데 이 세포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항체(antibody)나 사이토카인(cytokine) 등의 물질을 분비하여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는 다양한 면역치료 방법이 시도되게 되었다.

암 면역치료는 수동과 능동 면역치료로 나눌 수 있다. 수동 면역치료는 앞서 언급된 면역세포, 항체나 사이토카인 등을 체외에서 다량으로 만들어 암환자에게 주입하여 암세포를 죽이는방법이다. 요즘도 신장암이나 흑색종 등에 사용하는 고용량 ‘interleukin-2’(IL-2)가 그 예다. IL-2는 정상적으로도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암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서 분비하는 단백질인데 그 양을 엄청나게 많이 외부로부터 주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부작용이 심하고 극히 소수의 환자에서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다. 전립선암에 사용하는 프로벤지(Provenge)는 암에 이미 노출되어 암을 인지하고 공격할 수 있는 면역세포를 모아 체외에서 대량 증식하여 다시 환자의 체내에 주입하여 암을 죽이는 신약이다. 그러나 이런 약도 평균수명을 수 개월간 연장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어 한계가 있다.

능동 면역치료는 백신을 체내에 투여해 우리 몸에서 면역세포를 능동적으로 만들게 해서 이런 세포들이 암을 공격해서 죽이도록 하는 방법이다. 암 백신이란 암 암세포에만 있는 특징을 인간의 면역체계에 인식시켜 몸에 암 면역성을 길러 주는 약이다.

즉, 백신은 암에만 있는 특징을 우리 면역체계에 더욱 강력하게 인식시켜 면역반응이 더 활성화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암에 대한 다양한 백신들이 연구되었지만 그동안 큰 성과를 내는 신약들은 없었다.

그 주된 이유는 모든 암세포가 암에만 보이는 특징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암의 특징이 약하게 나타나는 세포들은 면역세포가 인지를 못해 파괴를 못하고, 결국 이 세포들이 다시 자라게 되는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런 답보상태에 있던 면역치료 연구에 돌파구 역할을 하게 된 ‘immune check point inhibitor’라고 불리는 면역검문 억제제에 대해 알아보겠다.

문의 (213)388-0908 (LA 암센터)

<안상훈 / 암 전문의·엘에이 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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