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실(연합감리교회 뉴욕연회 여선교회장)
얼마 전 20명의 한인들과 함께 남미 여행을 했다. 대부분이 40년 정도 되는 이민생활을 한 탓인지 삶의 경험도 비슷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공통 관심사로 상대방을 알아 가는 것도 희귀한 해양 동물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에 재미를 더했다. 첫 날, 페루의 수도 리마 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삼성”과 “LG” 선전간판은 깔리듯 있었고 현지 안내자는 한국의 경제발전이 페루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며칠 후 70세 의사 부부와 함께 각자의 여행 경험담을 나누었다. 내가 일본에서 맛있게 먹었던 지방특색의 가이세키(정식)가 좋았다고 하자 비교적 조용한 의사 분은 일본음식에 대해 불편함을 보이며 자신은 일본 물건을 사거나 일본 여행을 할 의향이 전혀 없고 한국인은 일본의 침략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참 오랜만에 들어 보는 난감한 이야기며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언뜻 오랜 이민 생활에서 잊고 살았던, 초등학교 때부터 (국민학교가 일본식이라 “초등학교”라 부른다지만, 내가 졸업한 학교는 “덕수국민학교”다.) 반일감정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제 강점기에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응징의 일환으로1950-60년대에 정부차원으로 벌렸던 일제상품 불매 범국민운동은 첨단기술로 만든 그들의 승용차와 월등히 우월한 전자 제품들을 몰래(?) 구매하는 비밀 아닌 비밀이 성행하게 했고, 구매할 수 있는 특권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시민들의 태도로 과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보다는 정신대란 명목으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잡아 간 전쟁범죄를 확실한 증인들을 내세워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응을 했어야 조금이나마 국민과 국가의 자존심을 보상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 된지 무려 40여년이 지나서야 현대판 노예제도인 정신대 사건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시작했고, 그동안 피해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조차도 수치로 여겨 감추고 숨어 살았던 한국사회의 비합리적인 태도가 바뀌어져서 이제 때 늦은 정의를 주장을 하게 되었다.
역사적 사건 때문에 무조건 일본인과 일본상품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한국을 사랑하는 것이라 믿는 것은 미국을 “내 나라”로 삼아 편리하고 풍성한 삶을 살면서도 사고방식은 옛 한국으로 맞추고 있는 것이다. “Let bygones be bygones”라는 속담처럼 지난 것은 지난 것으로 두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여 전진하는 삶을 누려가는 미국식 생활방식과는 무척이나 상반되는 것들이다.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잊을 수도, 용서 할 수 도 없고 도저히 함께 걸어 갈 수 없다면 어떻게 이 땅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 누가 평화를 위해 일을 할 수 있을까? 누가 이웃으로 남아 공존할 수 있을까? 매일 신문기사에 터져나는 세계의 불화가 바로 이런 사고에서 발상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일본인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감에서 해방이 돼야 겨우 일본을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정상에 오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갈 때에 페루 뿐 아니라 온 세계에 곳곳에 “삼성”, “LG”, “현대”의 사인들이 나 붙을 것이다.
다행히 그 분과는 독도에 대한 같은 의견으로 기분 좋게 대화를 끝내었다. 일본 정치인들이 가끔씩 뱉어내는 “독도는 일본 땅”이란 망발에 소학교 어린이부터 언론, 정치가들이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 언제 또 야심찬 일본 정치가가 “제주도는 일본 땅” 이라고 주장 한다면 “제주도는 한국 땅” 이라며 같이 흥분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