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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자원봉사 서둘러라?

2015-05-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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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대학 교수)

며칠 전 어느 일간신문 교육면의 ‘자원 봉사 서둘러라’라는 제목을 보고, 과연 봉사는 왜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봉사는 한 마디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른 사람이나 뜻있는 일에 대가 없이 바치는 것을 말한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수 없이 많다. 충분하지 않은 예산 때문에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병원이나 공공 도서관, 무숙자를 위한 시설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곳에는 항상 일손이 모자라게 마련이고, 그런 곳일수록 봉사자들의 시간과 노력이 값지고 소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봉사하기를 권하고 그 중요성을 잘 가르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책임이요 또한 도덕적 의무이다. 봉사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봉사를 통해서 스스로 세상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성숙한 인격과 미래 지도자의 성품을 갖출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왜 봉사를 하는 것이 옳고 또 바른 일인가를 말할 때, 신문의 제목처럼 좋은 대학에 가려면 일찍부터 봉사를 해서 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논리가 과연 교육적인 것인지 우리는 스스로 한 번 되물어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자원봉사는 봉사 그 자체가 옳은 일이요 바른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봉사를 해서 따라오는 이점이나 이득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려면 일찍부터 자원 봉사를 해야 하고 또 어떤 종류의 봉사를 해야 더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수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우리가 그 의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 의무 자체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요 또한 바른 것이기 때문이지, 그 의무를 수행함으로 따라올 수 있는 칭찬, 스스로의 만족감, 혹은 받을 수 있는 상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칸트의 가르침을 대강 적용하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봉사는 그 봉사 자체가 옳고 바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자원봉사 서둘러라’라는 신문의 머리기사는 그런 점에서 심히 비교육적인 기사라고 볼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고 어디에 있던지 이웃을 위해 더 많은 봉사를 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가르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서둘러 봉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옳은가?

봉사의 본질을 외면하고 하나의 방편으로 하는 봉사는 도덕성이 결핍된 무보수 노동에 불과하다. 이런 노동에서 과연 우리 청소년들이 성숙한 인격과 미래 지도자의 자질이나 성품을 배울 수 있을 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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