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산문] 최 정 ㅣ라이프 세이버
2015-05-07 (목) 12:00:00
라이프 세이버라는 사탕이 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자주, 갖가지 과일맛을 딴 동그란 사탕. 한국말로 치면 거창하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물건’ 이라고까지 번역해도 무방할 그 사탕은 그이름 때문에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탕이다.
하나씩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그 사탕을 몇 개 갖고 다니면 요긴할 때가 있다.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다. 비행기 여행이란 게어릴 때 동경할 때나 근사하지 실은 통조림 통에 갇힌 모양새로 몇시간을 가다보면 공연히 옆의 사람이 아무 이유없이도 미워지기 십상인 고난의 시간이다. 한번은 내 앞 자리의 창가에 앉은 아줌마가 계속 들낙거려 옆사람을 신경질나게 하더니 드디어 비행기가 종착지에 닿나 싶자 벌떡 일어나 그 당장 혼자 쓱쓱 걸어나갈 방도라도 있는 것처럼 옆사람을 밀치며 설친다. 통로에 앉았던 사람이 드디어 화가 터졌다.
눈을 흘기고 이맛살이 구겨지고 입을 앙 다문다. 내가 그 심정 알지… 넌지시 웃으며 라이프 세이버 하나를 건넸더니 얼떨결에 받아들고 들여다보더니 라이프 세이버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사탕을 입에 넣는다. 그러면서 독이 올랐던 눈매는 스르르 풀리고 무연한 표정으로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린다. 참 별것 아닌 일이 한순간에 우릴 야수로 만든다.
엊그제는 우체국엘 갔는데 뚱뚱한 중년여자하고 말라깽이 젊은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 높여 말다툼을 하며 우체국을 향해 걸어간다. 아마도 파킹 자리를 놓고 시비가 붙었던 것 같다. 그 우체국의 주차시설이 적고 불편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열 내고 싸워 기분 잡치게 되는 것보단 조금 먼곳에 차를 세우고 스을슬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아마도 무지 바쁜 상황이어서 한발자욱이라도 가까이 세워야 할 필요가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사자가 아닌 나는 쉽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데 그러나 나 역시 당사자가 되면 사생결단을 하자고 들이댈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오는 상황을 유연하게 요리하는 건 상당한 인내와 지혜와 연습이 필요하다. 이즈음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타인과의 교감 등이 부족하면 ADHD 라든가 아스파거 같은, 발달장애에 대한 병명이 붙여지고 야단을 치고 멸시하는 대신 인내를 갖고 지켜보면서 개별적인 특수 수업과 관심이 주어진다. 손자가 아스파거 진단을 받고 그에 따른 지도 방식을 지켜보면서 그 애가 지금의 세상에 태어난 게 얼마나 고맙도록 다행인지 몰랐다. 손자는 애기때부터 무언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면 그 자리에서 손을 쓸수없이 뒤집어지곤 했다. 이즈음은 그 모든 행동 발달에 대한 연구가 깊어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동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규칙을 따르지 못하면 그것을 발달장애로 보기보다 그저 엄청 말 안듣는 문제아 취급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학우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경멸하고 선생들은 그저 버릇을 고쳐 놓는다고 드립다 패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지금도 어느정도 그렇지만) 낯선 별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사회규범의 많은 것이 이해 안돼 고통스러웠던 나는, 이제 약간의 motor skill 외에는 모든 게 정상일 뿐 아니라 오히려 뛰어나게 영리한 손자를 보며 나의 학창시절을 슬퍼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에 배울 수 있었더라면 이 나이 되도록 동창들에게 왕따 당하는 슬픔은 없었을 것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주어진 인연들과 이해와 사랑을 나누며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을. 사회의 규칙에 적응하는 일도 연습해야 한다.
타인의 필요에 민감해지는 것 역시 자꾸 연습을 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