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의 달 특집기획/ 한인 독거노인 문제 이대로 좋은가
▶ (1) 김 할머니의 하루
김 할머니는 텅빈 노인아파트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때는 언제나 성경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30년전 미군과 결혼한 막내딸과 이민
그동안 정부 보조금 받아 근근히 생계
“한국에 8남매 있지만...가고 싶지 않아”
최근들어 한인사회 고령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연방센서스국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미주 한인인구가 약 177만 명으로 조사된 가운데 65세 이상의 한인 인구는 전체의 10%가 넘는 18만 명에 달하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무려 2배나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이처럼 한인사회가 급속히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녀와 배우자 없이 홀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뉴욕일원 한인 노인 6명 중 1명은 독거노인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을 정도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본보는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뉴욕 한인사회 독거노인 실태에 대해 심층진단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1>김 할머니의 하루
지난주 본보에는 안구 기증의사를 묻는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으레 자신의 사후 시신과 함께 안구를 기증하려는 선의의 독자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80대 한인 할머니가 현재 자신의 온전한 안구 하나를 기증하고 싶은데 가능하냐는 문의였다.
내용인 즉, 자신이 이용하는 데이케어센터 직원이 시력이 좋지 않아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건강한 한쪽 눈을 떼어주는 수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세상을 볼 만큼 다 봤기 때문에 더 이상 여한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자가 며칠 뒤 관련 기관에 알아보니 ‘안구 기증은 65세 이하인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자 “꼭 기증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할머니의 삶이 궁금해진 기자는 만나 뵙기를 청했고 할머니는 쾌히 승낙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스태튼아일랜드 노인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는 김모(83) 할머니. 만나기로 약속했던 지난주 일요일 오후 할머니는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시간은 일주일 가운데 가장 외롭고 한적한 때라 한국의 가족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엔 성경을 읽으며 외로움을 씻으려 합니다."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지역에서 홀로 살아왔다는 김 할머니가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30여 년 전 미군과 결혼한 막내딸과 함께였다.
"주변에서는 내가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데 사실 슬하에 아들 넷, 딸 넷 합해서 여덟의 자식들을 두고 있어요. 모두 한국에 살고 있는데 그 손자, 손녀까지 합하며 정말 대가족이지…" 얘기를 꺼내는 김 할머니의 얼굴에는 흐뭇함과 동시에 왠지 모를 아련함이 넘쳤다.
막내딸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함께 산 기간은 2년 남짓에 불과하다는 김 할머니는 이억만리 타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은 딸과 사위 등 세 가족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한인교회 지인의 도움을 받아 뉴욕으로 건너와 스태튼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된 김 할머니는 이후 베이비시터, 홈케어 도우미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 오다 시민권도 따고 노인아파트도 장만했다.
막내딸은 이혼 후 아예 소식이 끊겨버렸다. 한때 한국의 자식들이 성화를 부려 잠시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빡빡한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자식들과 같이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아도 함께 있으면 서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고 불편한 점이 있어요. 고맙게도 정부가 다 도와주니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살만 한 것 같아요"라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 할머니가 들려준 하루 일과는 단조로움의 연속이다. 오전 4시30분이면 일어나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는다. 오전 7시15분이면 스태튼아일랜드 지역의 유일한 한인 데이케어 센터가 보낸 버스에 올라탄다. 이때부터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시작된다. 이제는 친 가족 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이 돼 버린 데이케어 센터의 직원이며 회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배 아파 놓은 자식들도 소중하지만 가까이서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고마운 법이죠. 피 한 방울 안 섞이고 돌아서면 남남이지만 매일 안부도 물어주고 얼굴도 들여다봐 주니 내 눈 하나 떼어준들 전혀 아깝지가 않아요." 오후 3시면 집으로 돌아와 운동 삼아 빈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한 바퀴 돈 뒤 오후 5시가 되면 다시 텅 빈 집으로 돌아온다.
김 할머니는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있다 보면 가끔 한국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들이 너무 보고 싶어진다"면서도 “그러나 어쩌겠나. 혼자 사는 것이 편한 것을…. 다만 소식이 끊긴 막내 딸 만은 꼭 한번 다시 만나보는 것이 평생 마지막 바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천지훈 기자> 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