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수필가>
이른 아침 찬란한 햇빛의 기운이 만물을 일으켜 세운다. 긴 잠에서 막 깨어난 듯 화사한 꽃망울들은 저마다 색깔로 팡파르를 울리고 가지마다 연 초록 꿈들이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긴 심호흡을 한다. 이 우주의 교향악을 부족한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기에 쉼표처럼 내리다 그치다 반복하는 가녀린 빗줄기 소리로 묵은 땅의 포효를 깨닫게 하시나 보다.
기다림이었나! 마중 나갈 이유도 없는데 채비를 하고 서성거린다. 겨우내 두터운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세포들이 꿈틀거리고 혹독한 잔재가 사라진 자리마다 끊임없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경이로움에 두 손이 절로 모아진다.
무기력한 발목에 힘을 불어 넣고 텃밭에 나가 상추, 들깨, 부추 채소를 고르며 서투른 호미질을 해본다. 겨우내 입었던 묵직한 옷들도 정리하고 방마다 먼지 앉은 커튼도 떼어 말끔하게 다시 걸었다. 이 구석 저 구석 밀고 닦다 보니 화장대 위에 달력이 눈길을 잡아끈다.
유난히도 붉은 숫자가 많이 박힌 5월의 제목아래 어린이날, 어버이날, 가정의 날, 스승의 날… 손바닥만 한 달력에서 금방이라도 꽃다발이 화들짝 피어나올 것만 같다. 희망을 노래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은혜를 생각하며 마음껏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축복받은 계절임에 틀림없다.
결혼한 아들 부부가 1년간 같이 살다가 비워둔 방에는 보석보다 빛나는 햇살이 주인 없는 침대 위에서 나를 반긴다. 직장이 쉬는 날엔 가끔 와서 저녁도 같이 먹고 하룻밤 묵어도 가지만 떠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별것도 없는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여닫는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손에 들려 보내고픈 어미의 마음인가보다. 갑자기 80이 가까운 불편하신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신혼일 때 큰 찜통만한 플라스틱 통에 풋고추를 갈아서 찹쌀 죽을 쑤어서 그 다듬기 힘든 알타리 무김치를 부천에서 서울 삼성동까지 전철을 타고 날라 오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잘 먹겠는데 힘드시니까 이 무거운 것 그만 해 오세요! 하며 떠나가시는 엄마의 뒷전에 대고 마음에 없는 말로 발걸음을 무겁게 해 드렸다. 감사히 잘 먹을게요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하시고 기뻐하셨을 텐데… 겪어 보고서야 뒤늦게 깨닫는 우둔함이 못내 부끄럽고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 신세대들은 표현을 참 잘 한다. 우리네는 마음에 간직한 감정을 절반도 못 꺼내 놓는다. 지금부터라도 미루지 않고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 특별히 5월은 감사의 달이 아닌가. 조금은 부족하고 불편해도 꽃이 아닌 들풀에도 감사하다고 말하자.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자녀에게도 칭찬에 인색한 배우자에게도 먼저 다가가 감사를 하자 가정 안에 날마다 행복의 무지개가 뜨리라. 물려받을 것 없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에게 진정 어린 감사를 표현하자 새벽마다 무릎 꿇는 그 자리가 기쁨의 강물이 넘치리라. 굽이굽이 마다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와 굳건히 서있는 나 자신을 향해서도 감사하다고 외쳐보자. 그리고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생명이 있음은 그 자체로 축복이며 감사인 것을 잊고 산다. 한 시절 화려하게 온 몸을 불사르다 지는 꽃들이 슬프지 않은 이유는 때가 되면 제자리에 다시 돌아올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봄의 교향악의 템포는 아주 느린 라르고 (Largo)이었으면 좋겠다. 연주회가 계속되는 동안 살아있는 모든 것 들에게 오래오래 감사를 전할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