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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초대/ 안용진 전 뿌리교육재단 회장

2015-04-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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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은 이웃봉사활동”

▶ ‘돈’아닌 좋은 일도 많이 하는‘한인’소리 듣고파

차 한잔의 초대/ 안용진 전 뿌리교육재단 회장

<사진=천지훈 기자>

▲좋은 일도 많이 하는 한인
“1986년부터 소호에서 세탁소(SOHO L & Corp)를 하며 뉴저지 팰팍에 16년째 살고 있다. 지역 주민 60%가 한인, 한인 60%가 장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인들이 학교와 건물을 짓고 공원을 만들었다.

한인들은 다 갖춰진 동네에 이민 와 살면서 장사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돈만 아는 한인들이 아니라 좋은 일도 많이 하는 한인들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안용진은 요즘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성미카엘 성당 사목회장으로 활동하며 조민현 신부를 비롯 교우들과 함께 팰팍 가톨릭센터(Palisades Park Catholic Center) 건립을 추진 중이다.


1999년부터 팰팍에서 살아온 그는 같은 동네에 처가식구를 비롯 조카들이 살고 있어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 한다. “이민 1세들이 그동안 본인과 가족만 생각하고 살았다면 이제는 2, 3세들이 지역사회 진정한 주인으로 뿌리 내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현재 PPCC 참여명단이 100명 정도, 500명이 목표다.

종교를 막론하고 많은 팰팍 한인들이 모이면 이들이 선거인단이 되고 투표권과 연결되어 한인들의 목소리 전달창구가 된다.” PPCC는 작년 11월28일 비영리법인 등록을 마쳤고 현재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센터는 어렵고 배고픈 이들에게 식사와 생필품 제공, 어려운 가정 자녀 돌봐주기(방과후학교), 한국문화 홍보 및 다양한 문화교류, 투표참여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안용진은 1994년 창립된 소호-빌리지 한인상인번영회 활동을 하면서 맨하탄 다운타운 톰슨 스트릿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를 성공리에 치른 적이 있다. 이웃이자 고객인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갖고 유대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소호 지역 한인상인 14명이 불고기와 샐러드 등 푸짐한 음식과 선풍기, 커피포트 등 상품을 준비하여 400여명이 몰려드는 성황을 이뤘었다.

한때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소호-빌리지 한인상인번영회의 이 행사는 뉴욕한인회가 추진한 이웃 사귀기 운동의 첫 걸음이 됐고 타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이민 오자마자 시작한 자영업
1941년 경북 김천 태생인 안용진은 1965년 부산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후 1966년~1971년 (주)동창실업 무역부에서 일했고 72년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1985년 (주)섬유업체 흥선 대표이사로 지압신발을 개발한 후 특허를 내고 미국에 수출했다. 그러나 30~40년 전 건강이전에 너도나도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라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그때 처가식구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 터라 자연히 미국 이민을 생각하게 되었고 1986년 온식구가 이민 왔다.

“처제가 하던 월드트레이드 센터에서 2블럭 거리에 있는 세탁소를 인수했는데 장사가 잘되었다. 고객이 커다란 가비지백에 옷을 넣어 갖고 오면 드라이클리너, 물세탁 할 것을 골라내고 세탁한 다음 깔끔하게 다려서 주니 다들 가격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소호 지역은 경기가 가장 빨리 늘어나고 불경기고 가장 늦게 오는 지역인데 9.11이후에는 경기를 탔다.” 그는 지금도 그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한다.


▲한미간에 맺어진 우정
뿌리교육재단은 2000년, 허리훈 전 뉴욕총영사와 이정화 전 뉴욕한인회장 등 한인단체 관계자들이 2세 청소년들이 어머니 나라에 가서 보고 배우고 체험함으로써 뿌리를 찾는데 목적을 두고 설립됐다.

안용진은 2005년~2007년 뿌리교육재단 제3대 회장으로써 모국방문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 시킨 공이 크다. 그가 인솔한 뉴욕과 뉴저지지역 고등학교와 대학생들은 사단 병영체험, 광주 5.18망월동 국립묘지 참배, 울산 현대중공업과 경주 석굴암 불국사 방문, 천안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한국어와 한국전통문화 특별강의 등으로 10박 11일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초창기 10여년은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모국방문프로그램을 운영, 2010년부터 고려대가 맡았다. “2006년 7월, 92명 방문단 학생들과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김천을 지나게 된다. 김천고 동창들이 김천고, 여고 학생들을 뉴욕 학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함께 직지사를 관광하고 밥을 먹으면서 1대1 펜팔 친구를 맺은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면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는 안용진과 김천고 동창생들의 묵은 정, 변함없이 깊은 우정이 미국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도 심어진 것이다.

▲한인사회의 훌륭한 자산
안용진은 한국 유학생들과 한인사회 2세들과의 교류도 추진했다. 뉴욕지역 유학생회 신동우 회장(크사니 창립)을 통해 180명의 유학생을 초청, 함께 식사하며 격려하는 등 한인 2세와 유학생 사회가 하나가 되는데 노력했다.

“역대 참가자 80% 이상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학생들 성적이 A그룹이다. 한 여학생은 힐러리 상원의원 추천으로 육사에 갔는데 아프가니스탄 공수대로 파견되었다. 그동안 뿌리교육 모국방문을 거친 학생이 1,000명, 이들은 한국과 한인사회의 큰 자산이다.” 현재 재단에서는 이들간의 네트웍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자부심 갖고 열심히 했다. 현재 더욱 번창하니 보람 있다. 한국을 더 잘 알게 된 아이들이 일이 생기면 모국으로 달려가는 이스라엘 국민들처럼 나중에 한국을 도와주리라 믿는다.”

뿌리교육 모국방문 프로그램은 한국역사 등의 사전교육, 학부모 모임, 교육 포럼 등이 수시로 열리다보니 일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제4대 회장에 연임되었었다. 가게 일을 젖혀놓고 뿌리교육 일에 쫒아 다니다 보니 비즈니스가 느슨해졌다. 드디어 가게 일을 보던 집사람이 당신하고 더 이상 못산다고 했다. 가정이 먼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잠시 사회활동을 접고 가게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허허 웃는 그다.

▲원만한 성격이 많은 친구 만들어
안용진이 한인사회 봉사에 본격 나선 것은 소호-빌리지 명예회장으로 있을 때였다. 1995년 제24대 뉴욕한인회가 출범하면서 부회장을 맡아 그 해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처음으로 먹거리 야외장터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불고기를 직접 구워 판매하는 등 4년간 한인회 일을 보았다.

또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부회장(11기), 95~96년 부산대학교 뉴욕동문회 회장, 2000년에는 대뉴욕지구 대학동문 총연합회 제6대 회장으로 활동했다. 안용진은 2007년 연세 사회봉사상을 수상 했고 20년이상 함께 골프 치면서 사귄 많은 교우 관계는 3년 전 한인버겐클럽을 결성시켰다. 버겐카운티에 사는 기관장이나 전문인들이 모인 단체로 그의 원만한 성격이 친구를 불러 모아, 현재 부회장으로 친목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골프를 치며 건강을 유지하는데 1998년 다이크 비치 골프장에서 알바트로스, 2010년 와일드 터키 골 클럽에서 홀인원을 할 정도다.

▲지역사회 진정한 주인 되기
안용진은 아내 오현의씨와 슬하에 1남1녀, 손자손녀 4명을 두었다. 아들 스티븐 안은 MIT와 콜럼비아 유니버시티 MBA를 했고 현재 헤지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고 딸은 마운트홀 컬리지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병원 연구실에 있다.

“아버지가 언론계통에 계셨고 평소 책을 많이 쓰셨다. 4남1녀 자녀들이 모두 그 영향을 받았는데 나 역시 뿌리 교육에 신경을 쓰게 된 것 같다. 한국에 사나 뉴욕에 사나 사는 것은 다 똑같다. 한인들이 장사를 하느라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청소년들에게 온전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길러주는 방법은 교육뿐이다.”

오랜 기간 2세들의 뿌리교육을 위해 애썼던 그는 지역사회 진정한 주인이 되는 방법의 하나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강조한다. 그는 오늘도 PPCC의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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