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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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4월의 노래

2015-04-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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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수필가>

지난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시침이 9시를 막 비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워 놓았던 집안에 출처가 미묘한 아름드리 꽃바구니와 직사각형 초콜릿상자가 식탁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보다 한발 앞서 귀가한 남편이 현관문 밖에 놓여 있어서 집안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주소는 정확히 우리 집인데 발신자가 전혀 알 수 없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입구가 열려있는 자그만 카드 안에는 기도의 동역자라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한 친정엄마의 안부를 묻는 전화도 자주 받는 상황이었고 또 하루 전에는 남편의 생일이었기에 더욱 의심스러운 꽃바구니와 초콜릿!떠오르지 않는 이름을 추적하다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카드를 따라온 꽃집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다 .플로리다에서 이메일로 접수 되었고 주소는 정확하다는 의연한 꽃집주인의 대답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니 다시 한 번 확인을 부탁한다고 말미를 주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후에 전화가 와서 배달이 잘못 되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한다. 정확한 주소는 우리 앞집의 옆집이었다. 저녁때 와서 가지고가 다시 배달하겠다는 것을 꽃가게를 대신해 꽃바구니와 초콜릿을 대신 배달해 주었다. 몸이 아파서 누워있는 친구에게 보낸 멀리 있는 친구의 애틋한 마음과 화사한 꽃을 보며 빨리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국할머니에게 볼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왔다.
어스름 해가 지고 꾸물거리는 날씨임에도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졸졸졸 봄물이 흐른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고 추웠던 겨울을 지나 희망의 노래처럼 소리로 봄이 다가 오나 보다.

봄은 꽃이고 꽃은 봄이 된다.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벚꽃, 백목련- 백목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길어야 열흘, 궂은 날씨에 피었다. 바로 지는 아쉬움에 애간장이 탄다. 꽃꽂이도 할 수 없고 책갈피에 넣을 수도 없어서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홀연히 떠나보내야 하는 고고한 짝사랑이다.

나는 봄이면 부지런히 꽃잎들을 수집한다. 주로 작은 잎사귀와 색깔이 선명한 것들을 두툼한 잡지책에 켜켜이 잘 눌러 두었다가 카드나 액자를 만들어 선물을 한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나 위로를 해주어야 할 사람에게 잘 말려둔 꽃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뿐인 작품으로 특별한 선물이 된다.

하룻밤 주인 잃은 꽃바구니에 하얀 목련 꽃 봉우리가 수줍게 숨어 있었다. 마른 가지위에 아프게 솟아난 생명! 애달파 보였다. 한겹 한겹 비밀을 품고 숨죽여 있는 봉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박 목월시인의 "4월의 노래"가 떠올랐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 꽃 피는/언덕에서/피리를 부노라....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아름다운 꽃이 피는 봄이 오는 길목에도 세찬 빗줄기가 시샘을 한다. 그럼에도 긴 겨울을 이겨내고 먼 길 돌아 찾아온 봄이어서 더욱 소중하고 반갑다.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을 펴고 우리의 삶도 봄같이 피어나길, 빛나는 꿈의 계절이 되길 노래함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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