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뉴욕주 공인 홈인스펙터>
터마이트(Termite: 일명 흰개미)는 죽은 나무를 먹고 산다. 본래 자연세계에서 터마이트는 실상 천적은 아니다. 강풍에 쓰러진 나무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완전 분해시킨 다음 한 움큼의 흙으로 만들어 버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고 이때 남은 잔재물은 썩어 다른 나무나 식물의 훌륭한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강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자연적으로 썩어 없어질 때까지 산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면 산은 온통 마치 나무쓰레기가 쌓인 듯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세계에서 터마이트는 죽은 나무를 깨끗이 청소해 주는 고마운 곤충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출현했을 때다. 미국의 주택은 지하실 기초구조물(Foundation)외에는 거의 모든 집이 나무 구조물로 되어있다. 이 나무구조물에 터마이트가 활개 치기 시작한다면 실상 이는 마치 인체에서 자라고 있는 암덩어리 같은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
나무 구조물을 사정없이 갈아 먹어치우는 고로 최악의 경우 집 자체를 쓰러뜨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더욱이 터마이트는 그 존재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암처럼… 그러다 보니 터마이트가 주택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어디에선가 나무구조물이 손상되었거나 현재 손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터마이트에 당해 본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치를 떤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내 주택 중 매년 60만 채에 달하는 주택이 터마이트 피해를 보고 있고 터마이트 방제와 피해 복구액이 무려 5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가정당 수리비용은 평균 3,000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상 터마이트가 주택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언제부터 집안에 터마이트가 존재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집의 나무 구조물에 손상을 줄 정도의 터마이트 군락이 형성되기 까지 평균 5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터마이트 걱정이 없는 곳은 알레스카 주처럼 추운 곳 밖에 없다. 추운 곳에서는 터마이트가 살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도 알래스카가 아닌 뉴욕과 같은 지역에서도 버젓이 나타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바로 겨울 내내 따스하게 열심히 군불 때는 집안의 보일러 때문이다.
터마이트는 마치 암처럼 꼭꼭 숨어 지내면서 나무 구조물을 열심히 파먹는다. 나무속만 전전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실상 불가능하다. 일단 집안에 터마이트가 존재하고 있다면 잠시 나마 육안으로 그 징조를 감지할 수 있는 때가있다. 마치 봄의 전령처럼 바로 요즘과 같은 따스한 봄이 시작할 때다.
대체로 따스한 봄날 첫 봄비가 내린 후 보통 일주일에서 10일 정도 지나면 날개 달린 집개미의 모습을 하고 날지는 않으면서 마루 위에 기어 다니는 스웜머(Swarmer:날개 달린 터마이트 혹은 Flying Termite로 칭하기도 함)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본시 터마이트는 절대 지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이 스웜머만 다른 곳에 또 다른 새로운 둥지를 틀기 위해 그 모습을 잠시 드러낸 후, 일단 새둥지를 찾으면 날개를 떨어뜨린 후 몸체만 나무속으로 쏙 사라진다. 이후 주택 내 깊숙한 나무 구조물속에서 번식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나무 구조물을 열심히 파먹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이른 봄에 웬 개미 땐가 하겠지만 이들 스웜머의 출현은 잠시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 것으로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스웜머가 출현했을 경우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 존재를 확인함으로서 방제 등 대책을 신속히 수립해야 한다.
문제는 일반 날개달린 개미와 스웜머의 구별이다. 본래 터마이트는 개미과가 아니라 바퀴 벌레과에 속한다. 따라서 몸매가 일반개미와 완전히 다르다. 확대경을 이용하여 먼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위로서 허리를 들 수 있다.
일반 전형적인 개미는 허리가 가늘다. 그런데 스웜머의 허리는 바퀴벌레와 마찬가지로 머리와 가슴과 배의 구별이 없는 절구통 모양을 하고 있다. 즉 굵고 날씬한 허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다음 구별방법으로 날개의 모양을 살핀다.
날개달린 개미들은 안쪽날개 한 쌍과 바깥쪽날개 한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개미의 안쪽날개는 짧고 바깥쪽날개는 약간 더 길면서 둘 다 마치 삼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터마이트 스웜머의 날개는 안쪽 날개와 바깥쪽 날개의 길이가 동일하고 그 모양이 마치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날개의 길이가 몸체의 두 배 정도 된다.
사실 이 정도면 터마이트와 일반개미의 구별이 분명하고 아주 간편하다.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통해 재차 확인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