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평생 지울수 없는 깊은 정신적 충격이나 상처를 말한다. 트라우마를 한번 경험하면 그것은 내 속의 괴물이 되어 나를 지배한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유사한 연결고리만 생기면 방아쇠가 되어 장애증상을 보인다. 그러기에 트라우마 환자들은 치유가 되지 않는 한 평생 지옥일 수 있다.
한달 전 교회 장로님들의 배려로 영화 국제시장 을 봤다. 부모님 고향이 흥남인 내겐 의미있는 선물이어서 몹시 감사했다.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로 시작해서, 부산 국제시장,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월남전 참전이라는 질곡의 한국 역사를 다룬다.
주인공 덕수는 그 모든 비극을 몸으로 겪으며 고통의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덕수는 트라우마 환자다. 흥남부두 철수때 여섯 식구의 가장인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막내 막순이를 업고 미군함에 승선하는 책임을 맡는다. 하지만 덕수는 아비규환의 승선 상황 속에서 막순이를 놓치고 만다.
아버지는 막순이를 찾기 위해 배에서 내리고 결국 그것이 덕수에겐 아버지와 막순이와의 생이별이 된다. 덕수에게 남은 것은 저 멀리 배 아래서 외치는 아버지의 마지막 외침뿐이다:
“꽃분이네를 찾아가라, 네가 가장이니까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 덕수는 부산에 도착 후 국제시장의“꽃분이네”상점을 찾아간다. 고모가 운영하는 가게였지만 덕수에게“꽃분이네”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덕수는“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리고 가장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자기 꿈까지 포기한다. 그래서 독일광부와 베트남 기술노동자를 자원한다. 표면적으로는 살기 위한 행동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모두가 아버지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덕수는 아버지와 관련된 자기 결정이 방해를 받으면 작은 일에도 과도한 분노와 행동장애를 보인다. 전형적 트라우마 증상이다.
하지만 덕수의 과도한 행동이 외부인에게 기형적일 수 있어도 그에게는 일종의 안식처다. 아버지를 만나는 유일한 통로이기때문이다. 가족 모임때 어린 손녀가“눈 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를 부르자 덕수는 어린 아이처럼 즐거운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가족은 그런 덕수의 행동을 노망증상으로 취급한다. 덕수는 여전히 60년 전 과거에 살고 있고 가족은 현재를 살고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덕수는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말하고 아버지의 인정을 확인한다. 덕수만의 트라우마 해결법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덕수는 결국“꽃분이네”를 처분한다.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에서 막순이를 만나며 가슴 속 거대한 벽돌도 거둬낸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즈음에 덕수는 허공에 대고 만족한 모습으로 아버지께 묻는다:“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덕수가 아버지에 갖혀 있으면서 동시에 트라우마에서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증거다.
하지만 60년이 흐른 후다. 60년은 너무 길다. 그래서 아프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시대 수 많은 덕수들이 있다. 특별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민자의 삶은 더할 수 있다. 모두가 다 나름대로의 트라우마(아픔)를 지닌채 살아간다. 그 트라우마를 다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줄여갈 수는 있다. 가장 좋은 치료제는 아픔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논리적 해석이나 판단보다는 상대방의 트라우마 신발을 신어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신발을 신고 한번쯤 걸어가 주는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한다. 늙은 덕수 부부가 부산항 부두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당신 나와 왜 결혼했수?”라는 아내의 질문에“이쁘니까!”로 덕수가 대답한다. 덕수가 같은 질문을 하자 부인은“사랑하니까요!”로 응수한다. 인생 말미에 동반으로 말미암은 덕수가 누리는 행복이다.
트라우마 인생이여도 결국에는 회복과 치유를 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이해와 배려 그리고 사랑과 동행의 관계를 통해 우리 주변의 수 많은 덕수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