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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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주의 안 통하는 미국법

2015-02-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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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변호사의 생활법률 상식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종종 ‘적당주의’를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이라고 간주한다. 예컨대 E2비자를 취득하려면 꼭 정식사업체가 있어야 하며 규정된 고용인 숫자를 고용하고 임금도 정식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서류를 가짜로 꾸며서 이민국에 제출했다가 제대로 해도 비자가 나올 수 있는 케이스를 긁어부스럼 만들기도 한다. 미국법이 허술한 것 같아 보여도 ‘길러서 잡아먹는’ 법인 것이다. 한 번 세금감사를 받으면 혼쭐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적당주의’는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2003년 말까지 55년간 미국으로 정식 이주한 한국인 수는 86만명에 달한다. 미국 이민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중단되었다가 8.15 해방 후 재개되었지만 가난과 외화부족, 재정보증의 어려움 등으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소수의 유학생, 국제 결혼한 여성, 전쟁고아 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이룩되면서 매년 이민자 수가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즉, 1962년의 이민자수는 209명에 불과했지만, 그 뒤 계속 증가하여 1969년에는 7,373명, 1978년에는 3만5,592명으로 절정에 달했고, 1990년에는단지 1만4,268명이 이주하였다.

한국인의 미국 이주는 한미 두나라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인구 과잉국인 한국으로서는 이민정책을 강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미이민자 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렇게 급증하는 미국 이민자의 대부분은 큰 도시에 모여 사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로 이루어진 코리아타운은 최근에 급성장, 주류사회 주민들 앞에서는 국위를 선양하고 한인들에게는 고국의 따뜻한 정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문화적 배경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법률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라는 의식구조 상의 오해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이것은 공동체적 전통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는 촌락 공동체(village community)의 일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생활했었는데, 한국의 경우는 산업화가 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개념 아래 적당히 넘어가는 의식이 많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자기가 속해 있는 마을이나 종친 등 좁은 법위의 소집단 이기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적당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인들이 미주에 이주한 역사도 이제 100년이 넘었고 재미동포 수도 수백만에 달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1960년대 이후 이주한 사람들이므로 오늘날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업인 중에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 기업에 종사할 1.5세와 2세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여러 기업체의 사훈에 ‘만전을 기하자’는 정신이 부각된 것은 이에 대한 기업가들의 관심이 컸기 때문이라고한다.

즉, 근대적 기업활동의 역사가 짧은 상황에서 경영에 성공하려면 투자, 경영관리, 사업전환 등에 만전불패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만전불패 정신은 이미 오래전에 산업화가 이뤄진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사업가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어 소통이 불편하고 미국생활이 생소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기회를 포착하며, 창조적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기업인이 성공하는 것이다.

미국의 모든 기업활동이 계약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고, 가짜 상품을 만들거나 밀수를 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연방 세관은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제조된것으로 보이는 속칭 ‘짝퉁’ 제품이 수백만 달러가 훨씬 넘는다고 밝혔다.

품목 또한 다양해서 가짜 디즈니 셔츠, 가짜 켈로웨이 골프채, 가짜 헤네시 코냑, 해적판 DVD, 짝퉁명품가방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연방 세관에 따르면 한국산 가짜상품은 중국과 홍콩에 이어 3번째로 많다.

이것은 한국의 이미지만 실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형사문제와 민사문제를 초래하고, 가격 질서를 파괴하며, 정직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다른 한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우리는 이 소집단 이기주의의 범위를 넓혀야만 한다. 그리고 미국은 이 부분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어서 공동체적 의식구조가 아예 없었거나 오래 전에 현대화 했고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적당히’라는 말이 통하지 않음은 바로 공동체적 의식구조의 현대화 때문인 것이다.

(714)534-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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