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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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멍 때리기

2015-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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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 <수필가>

폭설이 천지를 하얗게 도배하고 움직이던 모든 것까지도 멈추어 버린 하루를 꼼짝 없이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몰아치던 황소바람에 온 몸을 내어 놓은 키다리 나무들은 꺾어질듯 흔들리다가 바로서기를 수 없이 반복하더니 햇살이 멋쩍게 얼굴을 내민 오후가 되어 서야 전장에서 승리한 초병처럼 묵묵히 정렬하고 서있다. 힘들었지 .잘 견디었어. 도와주지 못 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는 지금 보다 좁고 단단한 나이테를 갖게 되었고 그 것으로 인해 너를 더욱 튼튼하게 세워줄 것이며 새 봄에는 아름다운 숲에서 또 다른 희망으로 피어 날거야. 양지바른 소파에 몸을 맡기고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무를 향해 독백을 한다. 습관화된 짧지 만은 않은 분주한 생활의 틀에서 갑자기 멈추고 보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줄을 대고 손짓을 하는데 정돈이 덜 된 생각들이 헝클어진 머리위에서 주변만 빙빙 맴돌 뿐이다.


며칠 전 자정 가까운 시간에 토크쇼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그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큰 병이 된다는 것 이다.이미 다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제안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매우 흥미로웠다. 일명 ‘멍 때리기’ 였다.

자신도 모르게 덕지덕지 붙어 버린 스트레스에 과부화가 걸리면 어느 방편으로든지 탈이 나는데 갑자기 분노하게 되고 우울증이 찾아오고 더 심해지면 질병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학적 소견이란다. 몸이 아프면 휴식이 필요 하듯이 가끔씩 머릿속 피로도 풀어 주어야 한단다. 하던 일도 완전히 멈추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바보처럼 머릿속을 비워 주어야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울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자투리 시간마저도 자신에 대한 배려를 허락하지 않고 행여나 허투루 보낸 시간을 자책하며 살아온 날들이 무색하게 낯설은 하루를 흘려보낸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모양새 그대로 배꼽시계 알람도 꺼 놓은 채 눈 구경에 시간을 때우며 소득도 없는 애먼 생각을 불러들인다. 뒤뜰에 쌓인 저 눈은 몇 인치나 될까 숲속에도 온통 눈 바다가 되었는데 덩치가 큰 사슴가족들은 이 혹한에 어디에서 지낼거나.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순백의 자태는 보석처럼 빛을 내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햇살은 멀리 떠나 있는 하 많은 상념들을 허물진 가슴으로 날아 들인다.

무수한 기억들이 가파르게 되 살아 나지만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스스로에게 담금질 하고 살아온 날들에게 미안하다. 달리다가 뒤돌아 가는 방법을 깨닫지 못하고 잠시 쉬어 가는 오솔길도 잊고 있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 배달되는 뉴스들이 날마다 특종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정의도 사라지고 진실도 실종 되었다고 이구동성이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봇물처럼 터지는 아우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몸부림치다가 쓰러지는 자들에게 처방만 있고 명약이 없는 상황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채우려고만 하고 덜어 내지 못해서 생겨난 과부하 현상이다.

이럴 때 ‘멍 때리기’를 해야 한다는 정신과 의사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나는 한나절을 온전히 날려 버리고도 억울하지 않았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일들을 마무리 하며 나를 다시 채우는 용서와 나누어 줄 사랑을 눈감고 헤아리고 있었다. 무엇을 해도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최선을 다 했어도 최고의 결과를 꼭 얻을 수 없다는 이치를 되새김 하며 하나씩 내려놓는다. 공감하고 소통해 보려고 안달도 해본다.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여유를 찾고 작은 걸음 일지라도 천천히 걷다 보면 내일은 또 다시 우리 앞에 우뚝 설 것이다. 잠시 뒤 돌아보고 나니 나무들을 향한 독백은 나를 향한 위로와 다짐 이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필요 하다면 해야 한다 절박한 상황은 어디에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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