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쓰실 남자분’ ‘친동생처럼 일할 여학생’ ‘젊고 활기찬 유학생’
▶ 고용평등법 위반
맨하탄에서 수입 도매상을 운영하는 한인 P모(43)씨는 얼마 전 인터넷에 경리 직원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를 냈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구직자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당신의 구인광고에 문제가 있다”고 따지며 다짜고짜 ‘고용차별’ 소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P씨가 광고 문구에 ‘경리 업무 경험이 있는 여직원을 모신다’고 썼던 게 화근이었다. 현행 연방법상 특정 성별만을 고집하는 구인광고가 불법인 줄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여직원’이라는 성별을 명시했던 것이다.
P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고용시 성별로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한인들끼리 보는 구인 광고까지 문제가 될 줄 몰랐다”면서 “정말 소송을 걸어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종업원 채용광고를 게재하면서 지켜야할 기본법규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본의 아니게 곤란을 겪는 한인 업주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인끼리는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관련 규정을 무시했다가 자칫 소송을 당하거나, 연방고용평등위원회(EEOC)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사례가 종종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 연방 고용평등법은 고용주가 ▲나이 ▲성별 ▲출신국가 및 국적 ▲결혼 및 임신 여부 ▲건강상태 등으로 피고용인을 차별하는 행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한인업주들은 이 같은 규정이 직원 면접이나, 채용 과정에서만 적용될 뿐, 채용 광고에는 특별히 적용되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인들의 구인관련 웹사이트에서 ‘고용차별’적인 광고 문구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형별로는 ‘여직원 원함’, ‘힘 쓰실 남자분’, ‘친동생처럼 일할 여학생’, ‘웨이츄레스 구함’ 등 성차별 관련 문구는 물론 ‘나이 많은 분 연락자제 바람’이나 ‘젊은 분 원함’과 같은 명백한 나이차별적인 문구 등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오히려 ‘남녀노소 무관’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문구가 독특해 보일 정도이다.
이 웹사이트에 ‘젊고 활기찬 유학생’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한 한 한인식당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가게 분위기상 젊은 친구들을 고용해야 한다”면서 “구인광고 문구까지 신경을 써야하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후터스(Hooters) 식당과 같이 섹시한 여성을 컨셉으로 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이나 성별 등을 차별해도 되는 규정은 절대로 없다는 점을 업주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고용차별은 가하는 쪽보다는 당하는 쪽이 언제나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만큼 세심한 주의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정홍균 변호사는 “한국식 옛 사고방식으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임에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법을 적용하다 보니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게 고용차별”이라고 지적하고 “고용차별을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피고용인 입장에선 상처를 받고,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