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출혈로 뇌사판정 정명희씨 장기 기증
▶ 유가족들 본인 봉사활동 뜻 기려 결정
“평소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선 삶을 살아왔던 만큼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떠나게 된 것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진 후 뇌사 판정을 받은 뉴욕의 50대 한인 여성이 장기기증으로 죽음과 싸우는 다른 3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났다. 당초 9명에게 장기기증이 이뤄질 계획이었으나 입원 중 약물치료 등의 영향으로 최종적으로는 3명이 이식 혜택을 받았다.
안타까운 감동을 안겨준 주인공은 정명희(사진·57)씨. 주일예배를 마친 18일 지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긴급히 이송됐다. 하지만 해당 병원에서는 장비가 마땅치 않다며 한참이 지나서야 맨하탄의 한 병원으로 환자를 보냈고 거기서도 또 다른 인근 병원으로 다시 이송되는 길고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이틀 뒤 끝내 뇌사 판정을 받고는 회생하지 못했다.
생존 가망성이 희박하다며 가족들을 부른 의료진이 장기기증 의사를 타진해왔을 때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고. 평소 지병도 없었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며 건강하게 지내왔던 고인이었기에 갑작스런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기가 막히기만 하던 상황이어서 장기기증까지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평소 주변에 어려운 사람 일이라면 설령 자신이 가진 것이 없어도 도와주려 애써온 고인의 생전 삶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죽음을 앞두고 새 생명을 구하는 좋은 일에 고인도 뜻을 함께 할 것이란 생각에 이르면서 마침내 장기기증에 어렵게 동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편 정모씨는 “비록 집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내의 흔적이 세상 어딘가에 새로운 희망으로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말끝을 흐렸다. 처음엔 반대했던 두 아들들도 “평소 남 돕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였기에 분명 엄마도 잘했다고 기뻐할 것이라 믿고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게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평소 손맛이 좋았던 고인이 직접 만들어준 맛난 요리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 또한 앞으로 소소한 가족의 일상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는 플러싱의 한 한인교회에서 권사로 재직하며 뉴욕한인봉사센터(KCS·회장 김광석)에서는 한인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대접하는 일을 도우며 주방의 궂은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봉사해왔다. 김광석 KCS 회장은 “언제나 열심히 일하며 마음이 아름다운 분이셨다”며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다.
장기기증 수술을 마치고 뒤늦게 23일에서야 장례식을 치른 고 정명희씨는 1999년 가족과 함께 메릴랜드로 이민 와 뉴욕에는 2002년 정착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두 아들과 큰 며느리, 손주 2명 등이 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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