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가벼운 목재 사용 초동대처 미흡‘ 예고된 인재’

2015-01-24 (토)
크게 작게

▶ 화재피해 왜 커졌나

가벼운 목재 사용 초동대처 미흡‘ 예고된 인재’

23일 뉴저지한인회관에서 실시된 긴급 순회영사 서비스에서 피해 한인들이 영사 업무를 보고 있다.

21일 뉴저지 에지워터의 아발론 아파트 대형화재<본보 1월22일자 A1면>로 억 단위의 재산피해와 한인을 비롯한 1,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이번 화재가 ‘예고된 인재’였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화재에 취약한 가벼운 목재가 사용돼 건물이 지어졌고, 소방국과 아파트마저 재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작은 화재’로 끝날 수 있던 일이 건물 한 개 동이 완전 전소될 정도의 대형 화재로 이어진 만큼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가벼운 목재=전문가들은 한인 K모씨의 아파트에서 시작된 소규모 화재가 한순간에 번진 건 건물 자체가 나무로 지어진데다 사용된 목재마저도 화재에 취약한 ‘가벼운 목재’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가벼운 목재는 불이 났을 경우, 빠르게 번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자재는 비용이 저렴하고, 건물을 빠르게 건설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에지워터를 포함한 인근 아파트 건설에 이용돼왔다. 더 큰 문제는 2000년 이 아파트가 건축될 당시에도 이미 화재가 한 번 났었는데, 다잇에도 화재원인이 ‘가벼운 목재’였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재료비를 아낀다는 생각에 아파트 측이 화재와 같은 상황에는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동 대처 미흡=처음 불이 난 시각은 21일 오후 5시께. 하지만 본보와 만난 상당수의 주민들은 소방차를 처음 본 시각이 오후 5시30분 이후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최초 실수로 불을 낸 배관 인부들이 약 15분간 스스로 불길을 잡으려다 실패한 후에야 911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진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본보와 만난 한인 주민 박모(여)씨는 “소방차 출동했을 때 이미 불은 1층부터 4층까지 한 라인을 다 태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차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출동했다면 화재 규모가 훨씬 작았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소방국 협조 빨리 안 이뤄져=그러나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총 출동 대수가 한 대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은 30분간 이어졌다. 대형 화재였음에도 단 한 대만이 진압에 나서다 보니,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한인 주민 김모(남)씨는 “오후 6시가 돼서야 추가 소방차가 오고 헬리콥터가 도착했다”면서 “화재가 시작된 5시부터 거의 한 시간을 한 대의 소방차가 막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한인(여)은 “헬리콥터가 오히려 바람을 더 일으켜 불이 더 빨리 번진 것 같다”고도 했다.

■대피마저 늦어=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아발론 아파트 측이 처음 주민들에게 대피를 명령한 건 오후 6시30분께. 그것도 ‘이메일’을 한 통 보냈을 뿐이다. 더욱 주민들을 황당하게 하는 건 이메일이 당시 화재를 ‘작은 화재(minor fire)’라고 묘사했다는 점이다.

주민 박씨는 본보에 이메일을 보여주며 “작은 화재라고 해서 다들 안심하고 있다가 결국 아무 것도 챙겨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화재가 나면 아파트 직원들이 문을 두드리며 대피를 명령하고 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소방차가 여러 대 도착하고 나서야 움직였다. 주민들끼리 서로 알려줘서 대피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어떤 집은 불이 난지도 모르는 채 아이들의 피아노 레슨이 한창이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잦은 가짜 화재경보=대피가 늦어진 데에는 잦은 가짜 화재경보도 한 몫을 했다. 화재가 난 이후 화재경보가 울린 건 사실이지만, 아발론에서는 흔히 있던 일이다. 심지어는 이날 화재가 발생하기 두 시간 전에도 화재경보 오작동이 있었다.

전소 피해를 입은 한 한인은 “원래 화재 경보가 자주 울려서 주민들 대부분이 그냥 귀를 막고 참는 경우가 많다”면서 “우리 집은 경보음이 나오는 스피커 부분을 테이프로 막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한인은 “화재 경보가 끝나질 않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나왔는데, 결국 그 이후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영주권도, 여권도, 현금도 모두 두고 나온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이진수·함지하 기자> A3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