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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청양의 해에 부쳐

2015-01-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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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한인회장>

한국일보는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며 신년특집 (1.2.2015일자 신문)으로 양띠들의 소망을 실었다. 원하는 직업을 얻고 싶다는 취업 준비생,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결혼 적령기의 남자, 비즈니스의 내실을 기하고 싶다는 가장,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중년의 주부 등 한 결같이 인생에서 그 나이대의 시간을 살아가며 누구나 가져보는 소박한 바램들이었다. 해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출발선이 새해 아침인 것이다.

바쁘다는 말을 혀끝에 붙여 둔 채 떠밀리듯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니 하루쯤 일상을 접어 두고 스스로에게 Closed 사인을 걸어 두고 싶어졌다. 한 주전자의 커피와 오랫동안 선반 한 구석에 있던 라면 두개만 꺼내 놓아도 넉넉한 하루가 될 듯 했다. 그러다 겨울 한 낯의 무료를 견딜 수 없으면 집을 끼고 도는 언덕을 지나 천천히 성당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찬 겨울바람은 복잡한 사고를 더 명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이 굴속에 기거하며 상흔을 치료하고 다시 굴 밖으로 나서듯 상처투성이의 영혼을 홀로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사이 요즘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새 소리가 빈숲에서? 들려왔다. 늘 그림자로 보였던 이름 지을 수 없던 그 무엇들이 이제 그 실체를 알 수 있을 듯하다.

굳게 믿었던 것들이나 하잘 것 없는 것이라 폄하했던 것들이 실상은 등가(等價) 의 질량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리진 대오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다른 길이 있었음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지 못했고 산 너머 들리는 새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렇게 2015년의 새해를 맞았던 것이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비록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더라도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내일은 설레임이다. 살면서 가질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을 알았고, 받은 것에 비해 베푼 것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알았다. 받기만 했던 불구의 삶이 그래서 늘 춥기만 했던 것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보는 세상을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이 보일 것이고 내가 그르다고 생각하면 그른 것이 보일 것이다. 좋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나쁜 것은 없었다. 마음이 바뀌니 올해는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공동체에서도 누군가는 떠날 것이고, 그 빈자리에는 낯선 얼굴로 채워질 것이다.

골프에서는 멀리건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 티샷에서 실수를 했을 때 다시 한 번 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똑바로 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은. 처음 했던 그 자세 그대로 치거나 욕심이 생겨 더 잘 쳐보려다 또 다른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멀리건이라는 것이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라는 시간은 없는 것이다. 한번뿐인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다.

명심보감 천명편(天命篇)에는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 (逆天者亡) 이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하늘이 생사와 길흉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현 시대에 적용하여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상황을 보더라도 하늘을 두려워하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면 흥할 것이고 이를 거스르면 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다시 읽으며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길거리의 풍경과 산 너머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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