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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솔직할 수 없나?

2015-0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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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대 철학교수)

솔직하다, 진솔하다는 말은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나 경험을 꾸미거나 덧붙임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고 쓰거나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조고 (趙高)는 진시황의 환관이었는데, 황제가 죽은 후 세자를 폐하고 어린 왕자 호혜를 왕으로 세운 후 전권을 휘둘러, 천하를 통일한 진 나라를 15년 만에 망하게 한 장본인 이었다.

하루는 모든 신하들이 모여 왕을 알현하는 조회에서 왕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馬)이라고 우겼으나, 그 많은 신하들 중에 조고의 전횡을 두려워하여 솔직하게 사슴이라고 말하는 자가 없었다.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바로 이를 가리키는 말 이다. 솔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이다.
파리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MSNBC를 보면서 참 한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민주당 전국대표를 지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하워드 딘 (Howard Dean)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샤를 엡도(Charlie Hebdo)를 공격한 자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부르기를 중단 한다… ISIS는 컬트이다. 그러나 이슬람 컬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대낮에 사무실에 뛰어들어 많은 사람을 학살한 자들, 알라를 부르짖고 마호메트의 원수를 갚았다고 공언한 자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아니면 누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란 말인가? 애써 그가 한 말을 이해하려 한다면 대부분의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참 솔직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한 비겁한 정치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록위마를 강변하던 조고가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ISIS는 이슬람 제국을 재건하려는 무슬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 왜 하워드 딘이나 MBC에 출연한 소위 논객들은 이들이 이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이 애써 말하는 것일까?

이상한 것은 지난 번 미주리 주의 퍼거슨에서 일어난 경찰 총격사건에 대한 이 사람들의 주장은 이와는 또 정 반대라는 사실이다. 총 맞은 흑인은 아무 잘못도 없는 착한 청년인데, 인종 차별주의자인 경찰이 무조건 총을 쏴 죽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경찰은 다 인종차별주의 자들이고 살인자들이며……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로 찌들은 지옥 같은 사회라는 것 인데, 과연 그런 것인가?

어느 다민족 사회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종차별이 없는 곳은 없다. 우리와 같은 아시아계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이다.

총에 맞아 죽은 청년은 범죄자였다. 경찰을 공격해서 총을 탈취하려 한 증거가 명백하여 대배심에서 경찰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데, 흑인들은 방화와 파괴와 약탈로 대배심의 결정에 대답했다. 인종차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MBC를 비롯한 신문 방송들은 그 사건을 마치 인종간의 갈등 때문에 일어난 사건처럼 몰고 갔다.

방화와 파괴와 약탈을 소외된 자들의 정당한 분노의 표현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며, 벌써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LA 폭동 사건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에도 이들은 흑인들의 편을 들었지만, 실제로 피해자인 한인사회를 위해 목청을 높인 사람은 거의 없었고, 흑인들의 무차별한 공격과 파괴를 비난한 사람은 더욱 없었다.

우리는 좀 더 솔직한 지도자들을 원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정치꾼들에게 한 “표”가 중요한 것을 이해지만, 그 한 표 때문에 범죄자가 영웅이 되고,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은 범죄자로 매도되며, 선량한 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자들이 “소외된 개인”이지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니…또 그 들이 소외된 책임은 우리 사회 모두에게 있다는 식의 물 타기 위선은 긴 안목으로 보면 사실 ‘테러’ 그 자체 보다 더 위험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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