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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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MS8Q 타인종 학생에 한글 가르치는 채윤경 선생님

2015-01-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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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작 곁들여 흥미로운 수업 더불어 한국 예의범절도 가르쳐

퀸즈 자마이카에 MS8이라는 중학교가 있다. 학생 수는 493명. 그 중 흑인 60%, 히스패닉 30% 그리고 아시안 학생이 10%다. 아시안 학생도 방글라데시 와 인디아 학생들. 한인 학생은 단 1명도 없다. 그 곳에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채윤경(52) 교사. 그는 지난해 참 교육을 실천한 선생님에게 주 교육국이 주는 ‘내일의 교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늦깎이 선생님

채윤경(52) 교사는 한국에서 자랄 때 어린 시절 꿈이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그런 그의 꿈은 미국으로 이민 온 다음 늦은 나이에 이룰 수 있었다.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다 키운 후에야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퀸즈 공립학교에서 파타임 교사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정규교사가 되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대 대학원(Touro College)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해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40대에 늦깎이지만 교사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졸업 후에는 Middle School 74에서 장애아동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2013년에 MS 8 중학교의 한국어 교사로 채용됐다. 그는 한국어를 외국어 정규과목으로 선택한 그 중학교에 그렇게 첫 한국어 교사가 됐다. 그래서 그 때부터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단, 한 명의 한인 학생도 없는 그 중학교에서.

그는 “비록 늦은 나이에 교사의 꿈을 이뤘지만,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일이라 더 더욱 참으로 보람 있어요. 늦게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야죠”라고 말한다.

■“차렷, 인사, 안녕하세요?”

그는 MS 8Q 중학교에서 한 학기에 11개 학급의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다. 타 인종 학생 300명 정도에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는 중학교 졸업생인 8학년 위주로 수업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신입생인 6학년 중심으로 가르친다. 그들이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한글과 한국을 올바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배려차원이다.

그가 한인 학생이 단 한명도 없는 이곳에서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글 수업을 한 것은 횟수로 3년째. 처음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한국어가 외국어 정규과목이라 선택은 했지만, 한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밌고 흥미로운 수업으로 그들의 관심을 모아야 했다. 재미가 없으면 딴 짓하기 일쑤며, 그러다보면 뒤처지고 포기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각별한 한글교육 방식을 마련했다. 우선, 한글을 읽기, 쓰기 보다는 동작이 곁들어진 말하기로 수업을 진행했다.

가령 모음인 ‘ㅏ, ㅑ, ㅓ, ㅕ…’등은 입으로 소리를 내는 동시에 왼손, 오른손으로 모양새를 만드는 몸짓을 적절히 배합하여 익히도록 했다. 재밌어 하며 쉽게 따라했다. 또한 한글과 더불어 한국의 예의범절도 함께 가르쳤다. 학교에 행동장애 학생들이 많아 말썽꾸러기들에게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의 예절을 통해 올바를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언제나 수업은 ‘차렷, 인사, 안녕하세요?’로 시작된다. 그러다보니 한글 공부를 즐겁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선생님들을 존경하며 인사성도 좋아지는 여러 가지 행동변화의 긍정적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교사가 서서 강의하는 방법보다는 학생들의 활동을 위주로 배우는 훨씬 효과적인 학습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래서 재미와 흥미가 곁들여진 수업을 진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몸짓과 노래를 하며 한글을 배우다 보니 전에 없던 새로운 수업진행에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관심을 보이다보니 학생들의 한글 실력도 쑥쑥 자랐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사와 보람을 느끼곤 한다”고 말한다.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그는 MS 8 중학교에서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너무 힘들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행동장애가 있던 학생들이 착한학생으로 태도가 바뀌고 존경심을 보일 때는 참 오랜 기억에 남는다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앤젤라 그린 교장선생님은 그가 한국어 수업을 맡기 전에 “말썽꾸러기들이 많아서 학급운영이 쉽지 않을 겁니다”라는 조언을 했지만, 그는 ‘학생들의 규율만 잘 잡으면 수업에 지장 없겠지’ 하는 자신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설마’가 ‘역시’나였죠. 행동장애가 심한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무엇을 해도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우는 학생들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얘기할 때만 알았다고 하고 돌아서면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수업도중에 계속 떠들고, 말대꾸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며 욕하는 행동 장애가 심한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 때문에 수업진행이 어렵고 다른 학생들에게 까지 피해가 가니까 힘들어하고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꾸짖고 나무라기보다는 친근하게 타이르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2-3개월이 지나니까 아이들을 알게 됐고 가까워지면서 말썽은 부려도 순진한 중학생들이라 수월하게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너무 심한 학생들은 그들의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었다. 자녀의 나쁜 태도를 고치는 데는 어느 부모나 대부분 교사에게 협조를 해 준다. 그 후 자녀가 칭찬받을 정도로 태도가 좋아질 때는 매우 고마워한다고.

그렇게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다 보니 학생들도 ‘엄마’처럼 대할 때는 참으로 뿌듯하다고 한다. 그렇게 학생들과 생활을 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학교의 최고 인기(?) 교사가 됐다. 학부모 컨퍼런스 때는 영어, 수학의 중요과목 교사들보다도 한국어 교사인 그를 찾아오는 부모들이 더 많아진 것이다.
처음에는 행동장애 학생들이 많아 고생이 많았지만, 언제나 수업을 학생들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했고, 투정과 말썽을 피우고, 떠들다 야단맞는 학생들도 애정을 갖고 대하다 보니 그 후에는 결국 행동이 변하면서, 선생님을 엄마처럼 따르게 된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태도변화를 위해 점심시간에 말썽꾸러기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으면서 멘토 노릇도 해주다보니 모범생이 되는 학생들도 많고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좋은 선생님이로 생각하곤 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방학 때는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왔더니 많은 학생들이 방학인사를 하겠다고 복도 끝까지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은 아직도 감동으로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앞으로 학생 모두에게 엄마 같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한다.

■한국문화 재능기부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매력은 언어를 통해서 친숙하지 못했던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는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글교육이 중요한 것은 한글을 통해 한국문화를 올바로 가르치고, 한국정서를 통해 더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친숙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미국의 리더가 되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한글을 가르치며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소개하고 싶은 그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추수감사절 때는 한국의 추석을 통해 한국의 문화도 더불어 소개하는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그리고 한국문화 체험차원에서 K-pop과 한국의 고전무용 등도 배워주고 있다. 또한 한국음식점을 직접 찾아가 한국고유의 음식을 직접 맛보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좀 더 다양하고 많은 한국문화 체험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물놀이, 붓글씨, 피리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를 바라고 있다. 김밥, 잡채, 비빔밥 등을 만드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한국음식 요리사의 지원도 환영한다고.

그는 “매년 학생들이 고전무용을 배우는데, 발표할 때마다 한복을 빌리는 게 만만치 않다. 한인 가정에서 입지 않는 한복을 기부하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 특히 언제든지 이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려주고 싶은분들은 연락하면 기회를 장을 마련하겠다”며 한국문화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를 거듭 강조했다.

■나의 천직

“현재 한국어 교사로서 흑인, 히스패닉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통해 한국을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하다”

퀸즈 자마이카의 MS 8 중학교에서 타 인종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그는 2013-2014학년도 뉴욕주 교사평가 성적이 우수해 “내일의 교사상”을 수상했다. 소감으로는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치는 교사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뜻밖의 상을 받게 돼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는 교사의 매력으로 “아이들에게 학술과 기술도 가르쳐줄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꼽는다. 한글 교사로서 그는 “글로벌 세계에 살면서 외국어를 통해 다른 문화를 접촉하고 이해하고 친숙해질 수 있다. 그러 면에서 ;보면 한국어뿐 아니라 어떤 외국어든 할 수 있는 건 신의 선물”이라며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힘든 상황을 겪고 나면 그만큼 보람도 크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그는 학생들에게는 ‘쉽게 포기하지 말라,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보면서 천상 교사가 천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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