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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되찾았지만 ‘부족한 쉼터’여전히 숙제

2015-01-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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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 한인노인 퇴출사건 그후 1년…

평온 되찾았지만 ‘부족한 쉼터’여전히 숙제

한 노인이 맥도날드 파슨스블러바드 매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눈발이 흩날리는 6일 정오께. 퀸즈 파슨스블러바드 소재 맥도날드 매장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인 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노인들은 눈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꼭 1년전만 해도 노인들에게 이런 한가로움은 먼 나라 얘기였다.

이곳은 지난해 1월 한인노인들이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너무 오래 앉아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출동해 한인 노인 6명이 쫓겨난 곳이기 때문. 당시 맥도날드 매장은 끌려가는 노인들과 이를 항의하는 손님들로 아수라장이 됐고, 이같은 내용이 본보를 시작으로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에 보도되면서 맥도날드 파슨스블러바드 매장은 일순간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본보 2014년 1월7일자 A1면>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이곳 맥도날드 매장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맥도날드, 이젠 한인 노인들의 사랑방=이날 맥도날드를 찾은 최길환(78), 박인순(75)씨 부부는 “지난해 그 사태를 겪은 후 맥도날드 매장도, 한인 노인들도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는 매니저를 비롯 직원들이 조심스레 한인 노인들을 대하고, 한인 노인들 역시 맥도날드가 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당시 맥도날드는 큰 분쟁을 겪은 직후 론 김 뉴욕주하원의원의 주선으로 몇가지 개선안을 내 놓았다. 20분 만에 모든 음식을 섭취해야 했던 기존규정이 ‘1시간’으로 바뀌었고, 설령 1시간이 넘더라도 바쁜 시간이 아니면 계속 앉아있을 수 있도록 했다.
매장 매니저인 기셀라 산타는 “다른 손님들의 자리가 없을 때만 노인분들에게 자리 양보를 부탁한다”면서 “노인들도 이런 요청에 흔쾌히 응한다”고 말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하고, 이에 반항해 커피를 바닥에 던졌던 지난해 모습은 더 이상 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노인들을 배려하는 것을 넘어 노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직원도 생겼다. 박씨 할머니는 월터라는 이름의 히스패닉계 직원을 가리켜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이다. 제일 친절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인근 다른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건너편에 위치한 버거킹 매장의 관계자는 “한인을 비롯한 많은 노인들이 찾지만 절대로 내쫓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시점 빈 커피 컵을 들고 셀프 음료대로 향하는 노인을 보며 “저분은 하루에 7~8번 커피를 리필하지만 소중한 손님이기 때문에 절대로 뭐라고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도 갈 곳은 패스트푸드매장 뿐…=한인 노인들이 더 이상 박대를 당하지 않는 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마음 편히 쉴 공간이 패스트푸드 매장밖에 없다는 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플러싱 한인 노인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꼽은 곳은 파슨스블러바드 맥도날드와 건너편 버거킹, 루즈벨트 애비뉴의 맥도날드 매장 정도. 그 외 다른 커피숍이나 빵집, 식당들은 화장실이 없거나 장소가 협소해 눈치가 보인다고 노인들은 입을 모은다.

물론 당시 맥도날드 한인 노인 퇴출 사건을 계기로 여러 시니어 센터들이 50센트짜리 커피숍이나 사랑방을 개설했지만 거리상의 문제로 일부 노인들에게만 호응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일부 통증병원들이 노인들을 위한 카페 형태의 공간을 조성해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도 있지만, 많은 노인들이 ‘아프지도 않은데 가기는 좀 그렇다’며 꺼리는 현실이다.

버거킹에서 만난 정모(79) 할어버지는 “나도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수혜자지만 무슨 어덜트 데이케어나, 통증병원 이런데다가 막 쓰다보면 결국 우리 자식들이 혜택을 못 받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할아버지(85)는 “편하게 쉬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커피도 마시면서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면서 “결국 맥도날드와 버거킹만이 우리가 원하는 걸 채워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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