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 <수필가>
작년 겨울 이맘때쯤 친구의 급한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캐나다에서 날아온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친구의 궂은일을 끝까지 남아서 정리해 주었고 나 또한 그 어려운 일에 작은 손길을 보태고 있었던 터라 대면대면 몇 차례 만남이 있었다. 약 일주일가량의 모든 일이 마무리 되어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그는 나에게 큰일을 당하고 힘들어 하는 친구를 잘 부탁 한다며 자신의 연락처를 내 전화기에 남겨 놓고 돈독한 우정을 못내 안타까움으로 작별을 하고 떠났다.
그 후로 몇 차례 친구의 안부를 챙기는 문자가 오고갔고 어느 날엔가 초청장이 배달되었다 한국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인 밴드에 가입 하시면 어떻겠냐는 물음과 동시에 클릭하면 저절로 가입이 되는 사이트까지 보내왔다 그리하여 예기치 않게 남의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 밴드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의 동창들 중에는 여러 분야에 전문가가 많이 있었다.
그림에 조예가 있는 친구는 최근 전시회 소식과 작품의 평가는 물론 작가에 대한 배경 설명까지 곁들여 마치 전시회장에 다녀 온 듯한 학습을 하게 된다 .타지에 출장을 가게 되면 그 곳의 풍경과 역사적인 건축물과 배경들을 정성스럽게 사진으로 담아 올려 주어 가만히 앉아서 손 끝 하나로 이국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날씨 외 시즌에 맞게 신곡과 흘러간 옛 노래까지 센스 있게 선곡해 주는 멤버, 아름다운 시와 글들을 올려 같이 행복을 나누고 예술을 하는 친구의 작품을 소개하면 아낌없이 응원하고 박수를 쳐준다. 생일을 맞는 친구를 공지해 주면 너나 할 것 없이 들어와 축하해 주고 번개모임을 주선해서 가끔은 즐거운 자리도 만든다. 다양한 문화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빤짝이는 이 모임에서 오십을 막 넘긴 멤버들은 나에게 선배라는 과분한 호칭을 붙여 주었고 그 호칭에 걸맞지 않게 나는 그저 호강을 누리는 게으른 멤버로 근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밤과 아침이 다른 하늘에서 우연으로 이야기 되지 않는 만남이 수시로 밴드의 문을 노크하게 하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아도 만날 약속이 없어도 더 가깝게 다가오는 마음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가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불통인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가까이 있어서 자주 만나도 가까워 지지 않는가 하면 멀리 있어도 자꾸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살아가다 보면 우연한 만남이 필연으로 이어 지는 경우도 있고 필연이라고 만났지만 피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악연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도 보게 된다.
몇 개월 전 뉴욕 일간 신문에 팔십이 넘으신 어른께서 수필집을 출간 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자세히 읽어 내려가던 중에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마른 침을 꼴깍 거렸다 .우리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하던 자그만 가게를 인수 하셔서 한국으로 나가실 때까지 운영 하시던 그 고운 모습의 어른 이셨다 십 수 년이 흘렀어도 가끔은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지면을 통해서 간단한 근황을 접하고 반듯이 오려서 스크랩 해 두었는데 며칠 후 밴드에서 어머니의 수필집을 소개하는 내용이 올라 왔다. 아니! 밴드에서 리더로 수고하는 멤버의 어머니가 아니시던가! 반가운 마음에 국제전화 통화를 돌리고 주무시던 어머니를 깨워서 지나간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수화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멤버들은 다 나서서 극적인 재회를 크게 축하하며 나쁜 짓 하고 살면 안 돼 착하게 살아야 된다고 한마디씩 거들어 주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소중한 만남 이었는데 관계를 하찮게 여기고 경솔히 여겼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라는 속담이 말해 주듯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인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 되어지는 연속이다. 새해에도 더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가길 바라며 희망의 빛을 품고 붉게 피어오르는 여명을 마중하며 마음자리 비워둔 새벽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