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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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체스터/ 칼럼:할머니

2014-11-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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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연합 감리교회 뉴욕연회 여선교회장)

같은 말이 때와 장소에 따라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 “아!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며 깊이 있게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경우가 가끔 있다.

두 달 전 외동딸이 첫 손주를 해산하여 정식으로 “할머니”가 되고 보니 “할머니”라는 불림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감격스럽고 감사했던 것은 예상 밖이었다.
자녀가 성장하면 의례히 결혼을 하여 아기들을 낳아 키워가며 시끌벅적한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라 생각하며 우리 세대들은 살아왔다.


대략 나이 20대 말 즈음이면 결혼을 하고 2-3년쯤 후에는 아기들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즈음은 결혼도 그 보다 훨씬 늦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결혼을 해도 아기를 늦게 갖거나 갖지 않는 예도 허다하다. 세계화가 되어가며 다양한 삶의 방식과 형태들이 소개되고 인정되면서 우리 자녀 세대에게 “의례히” 하던 식의 삶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듯싶다.

하나뿐인 딸이 어렸을 때, 늦어도 29세에는 결혼을 하던지, 아기를 낳던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었는데 그 덕분인지(?) 딸은 30세가 되기 바로 두 주전에 결혼을 하고, 결혼 후 4년이 지난 후 지난 9월 말에 하나만 낳아도 감동일 텐데 딸 쌍둥이를 낳았다. 학수고대 하던 손주들이 한꺼번에 둘이나 태어나는 축복을 받고 “할머니” 반열에 든 나와 딸의 시어머니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서로 축하하였다.

내가 딸을 낳았을 때는 해산으로 지친 몸을 가누며 모유를 먹이고 집안 살림을 이끄느라 즐거움 보다는 경험 없는 엄마의 책임감이 더 컸었던 것 같은데, 손녀딸들이 태어나고 보니 이제는 시간의 여유도 있고 별 다른 책임감 없이 무조건 사랑을 퍼주는 입장이어서 인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여간 즐겁고 감사한 것이 아니다. 34년 전 내 딸과의 첫 만남, 무척이나 분주했던 젊은 여성으로서의 삶 속에서 딸을 키우며 누렸던 행복했던 motherhood의 추억, 그리고, 그녀의 두 딸과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귀한 grandmother-hood를 갖게 된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사춘기의 딸과 옥신각신할 적에 “너도 이담에 꼭 너 닮은 딸을 낳아서 꼭 같은 경험을 해보라”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 꼭 자기 닮은 딸을 둘이나 낳은 딸, 사랑스러운 아기들을 키워가며 열심히 책임 있는 엄마의 삶을 살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또 한 번 가슴 뭉클해지는 감격을 해본다. 임신 후반부부터 밤잠을 설치고, 해산의 몸을 어렵게 추스르며 두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느라 지금까지 한 번에 두 시간 이상씩을 자지 못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잠시 함께 살며 해산관을 해주고 보채는 아기들을 안아 주며 내가 가졌던 엄마로서의 행복한 삶 이상의 축복이 이 가정에 내리기를 기도해 준다. 그리고 한 없이 귀엽고 사랑스런 아기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나기를 축복해 준다.

내가 없을 훗날, 딸 역시 성장해 가는 자신의 딸들과 옥신각신하며 “너희들도 이담에 꼭 너희들과 같은 딸을 낳아서…”라는 푸념을 중얼거리며 “할머니”가 되어버린 이 엄마 마음을 기억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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