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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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아동 코트 한벌 800달러 가랑이 찢어져도 사서 입힌다

2014-11-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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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취재-한인사회에도 ‘등골브레이커’

뉴저지에 거주하는 정모(여)씨는 얼마 전 큰 마음 먹고 600달러짜리 프랑스 명품의류 브랜드 ‘몽클레어’ 패딩 코트를 샀다. 정씨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 킨더가튼에 다니는 다섯 살짜리 딸에게 입히기 위해서였다.

아이에게 고가의 옷을 사 입힐 정도로 정씨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위 부모들이 너도 나도 자녀들에게 명품 옷을 입히는데 괜히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싫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모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몽클레어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아이스크림이나 사달라고 하는 아이를 보면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다”며 “거금을 준만큼 당장 내년 겨울까진 입힐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자조 섞인 말을 남겼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고가의 명품으로 치장하면서 갖가지 사회적 문제가 대두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선 ‘명품’ 문제가 한인 어린자녀들에게도 옮겨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문제는 일부 한인 부모들을 중심으로 자녀에게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히느냐가 자존심(?)을 세우는 척도로 여겨지는 인식이 퍼지면서부터다.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등골 브레이커’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학생들의 아웃도어 명품 바람이 미국까지 불어온 모습이라는 게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등골 브레이커는 한때 한국에서 국민교복 열풍을 일으킨 노스페이스와 몽클레어, 캐나다 구스 등 고가 인기 브랜드의 가격이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정도로 부담이 된다는 의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녀들에게 자칫 잘못된 세계관을 심겨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뉴욕일원 한인 데이케어 센터나 학원 관계자들도 예년에 비해 한인 학생들의 명품 착용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뉴저지의 한 보습학원 교사는 “비싼 명품재킷은 물론 고가의 신발, 명품 목도리 등 아이에게 과하다 싶은 의류를 부모들이 입히는 게 요즘 확연히 드러난다”면서 “자신의 자식이 다른 자녀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유명 명품 브랜드는 성인용 의류 외에 따로 어린이용 옷을 만들어 판매한다. 가격은 성인용에 비해 다소 저렴하지만, 일반적인 아동복에 비해선 가격이 만만치 않다.

요즘 한인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몽클레어나 캐나다 구스 코트는 500~800달러. 목도리 형태의 버버리 스누드는 200달러, 또 어그 부츠나 애쉬와 같은 어른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신발 브랜드는 100달러에 가까운 금액에도 한인 아이들이 신은 모습이 목격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킨더가튼 학부모는 “엄마들끼리 모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서로 보게 된다”며 “사정이 허락해서 고가의 옷을 입히는 건 상관없지만 대부분은 그런 옷을 감당하기 힘든 평범한 중산 층”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부모들의 빗나간 명품 심리가 자칫 오히려 자녀들에게 그릇된 세계관을 심어주는 게 아닐 지 심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함지하 기자> 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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