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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여건과 기업의 대응

2014-11-17 (월)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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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던 어릴 적 필자가 살던 마을에 굴뚝청소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가끔 방문하곤 했었다. 나무로 만든 대형 풍로를 아궁이에 연결하여 힘차게 돌리면 구들장을 막고 있던 그을림과 재들이 시커멓게 쏟아져 나왔다. 온몸에 검정 그을림을 덮어쓴 인부의 수고 덕분에 그날 밤부터 고루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FRB는 6년간 4조5,000억달러의 천문학적 발권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처음 이 조치를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경기가 곧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으며 보수적 견지의 학자들은 막대한 양적완화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선진국 중앙 은행장들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예상해 원유·구리·철강석 등 원자재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지금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지만 반대로 달러 강세를 예측해 여타 국가의 통화 하락에 베팅한 소수 투자자들이 큰 수익을 얻고 있다.


지금의 현상은 경제학계가 소위 학파라고 인정한 고전주의부터 마르크스, 슘페터, 케인스, 그리고 행동주의까지 9학파 이론의 어디에도 명확한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찍어낸 엄청난 달러는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절반 이상인 2조5,000억달러는 다시 FRB 금고로 돌아가고 1조6,000억달러는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올리는데 사용됐다. 2008년 은행이 쌓아놓은 지준금은 1.400억달러 정도에 불과했으나 2014년 평균은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돈은 무한정 풀었지만 다수 금융 소비자들의 신용 공여를 줄임으로 은행은 풍부한 유동성을 소화하지 못하고 의무 이상의 지준금을 중앙은행에 맡겨놓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넘쳐나는 자금을 투자를 통한 미래가치 상승과 고용창출에 사용하지 않고 당장 주가를 올리는 자사주 매입에 소진했음을 알 수 있다. 저금리 자금을 기업에 무제한 공급해 주면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에 투자해 양질의 직업 창출은 물론, 관련 산업의 낙수효과로 경기 부양에 기여할 걸로 기대한 정부의 예측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은 99% 아랫목을 덥히기 위해 많은 불을 뗐는데 소수 1%의 윗목만 더 달아올라 빈부의 격차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 왔다. 융자조건을 더 어렵게 만들어 대중들의 신용 공여기회를 줄임으로써 넘쳐난 유동성이 소수에게 몰아서 돌아갈 때 발생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어느 나라든 정책 입안자들은 화려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 시커먼 검댕이는 누구도 덮어쓰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막힌 굴뚝을 뚫기보다 군불을 더 때는 손쉽고 편안한 방법을 선택하는 대리인의 전형적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취약성을 간파한 슘페터는 어차피 자본주의는 고사할 운명이라고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요즘 경제지표는 크게 개선됐지만 경기가 좋아졌다고 느끼지 못함은, 당국자들의 디플레이션 우려와 반대로 빠르게 상승하는 주거비용과 식료품 값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11월 중간선거 결과는 미국인들의 분노와 절망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어느 시대든 경제상황은 기업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배라면 경제는 배를 띄우는 바다와 같기 때문이다. 바다는 언제나 돌발상황이 발생할 리스크가 매우 높다. 따라 서 크기와 상관없이 작은 파도에 휩쓸려 침몰하는 배가 있는가 하면 태산 같은 풍랑을 헤치고 앞으로 전진하는 선박도 있다. 극한의 바다를 항해할 때는 선체가 높아 상대적으로 홀수가 낮은 화려한 유람선보다, 멋은 없지만 높은 파도에도 안정적인 복원력을 구비한 홀수가 깊은 튼튼한 선체가 유리하다.

역사상 유례가 없던 저금리 시대란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불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시기에는 확장보다는 회사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운영하는 게 좋다. 자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꼼꼼히 분석해 효율의 극대화로 대응 하라고 권하고 싶다.

기업의 가치는 성과에 비례하며 경쟁도 결국은 효율성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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