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파원 칼럼
▶ 김현수 / 서울경제 베이징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향한 발언의 강도가 날이 갈수록 높이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상황에서도 연타를 날려 일본을 코너로 몰아간다.
지난 7일 중일전쟁의 계기가 됐던 7·7사변(노구교 사건) 77주년 기념식에서 시 주석은 일본을 ‘일구’로 지칭했다. ‘도적의 무리’라는 뜻이니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 모욕적 표현인 셈이다. 일주일 전 방한 당시에도 시 주석은 단독회담 비공개라는 외교적 관례를 깨뜨리면서까지 일본을 향한 한중 공조를 강조했다.
서울대에서 강연도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을 예로 들며 한중이 힘을 합쳐 일본 침략에 대항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시 주석답다. 거침이 없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우경화에 적개심을 품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시 주석의 말은 통쾌함마저 준 것도 사실이다.
중일 갈등은 한일 관계처럼 역사적 뿌리가 깊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 들어 중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물론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조어도) 등의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고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가 중국을 자극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시진핑 정부 들어 중일 관계에 대해 과거와 달리 회복하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인 문제일 뿐 중일 간 경제교류는 여전히 좋지 않을까 라고도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교역량도 지난해 6.8%나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3년 내 한중 간 교역량이 중일 간 교역량을 앞지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도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차 구입 거부,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은 줄었지만 일본과 전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과격한 의견이 공공연히 나온다. 기자와 만난 한 사업가는 중일전쟁이 다시 터진다면 1,000만위안(약 16억3,000만원)을 내놓겠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시 주석에게 일본과 갈등은 권력 강화의 좋은 먹잇감이다. 안으로는 강력한 부패척결로 권력을 다진다면 밖으로는 일본과의 갈등만큼 권력 강화를 위한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응한다는 목적이 아니라도 시 주석이 굳이 중일 갈등을 서둘러 풀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한 중국의 동북아 전문가는 중일 관계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중일 관계가 아마 예상보다 장기간 이런 식으로 갈 거다. 결국은 경제력이 문제 아니겠느냐. 중국이 계속 성장하면 일본이 숙일 것이고 일본의 경제가 살아난다면 중국이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는 말은 결국 중일 갈등이 시간과 경제력의 싸움이라는 말인 셈이다.
중국에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우방이 있다. 아베 정권이 시간에 쫓겨 동북아 질서를 흔들고 있지만 중국은 자신이 짜놓은 시간표대로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꼬인 매듭을 풀어 가면 그만이다.
시 주석이 한국을 다녀간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시 주석은 우리에게 연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돌아갔다. 중국 내에서는 한중 FTA의 올해 내 체결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여기다 우리 무역에 부정적인 대만과의 경제협정도 서두르고 있다. 동북아에서 한국과 대만을 끌어들여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한중 FTA 연내 타결도 시 주석의 동북아 전략의 시간표다.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 아래 내줄 것은 내줄 테니 이제 한국이 답을 하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중일 갈등이 시간과 경제력의 싸움이듯 동북아 경제 질서도 시간과 경제력의 싸움이다. 중국의 시간표에 맞춰 우리가 쫓길 필요가 없다.
쓰촨성 충칭의 소매 유통망을 장악해 중국 내에서 화제가 되는 대형마트 용후이차오스의 점포 확장전략은 ‘이대도강’(작은 이익을 내주고 큰 이익을 얻는다)이다. 거점 지역을 얻기 위해 손해를 감수한 엄청난 할인행사로 경쟁마트를 몰아내며 10년 만에 충칭을 평정했다. 시 주석도 동북아 권력구도와 경제를 놓고 중국인 특유의 장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