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네티컷/ 칼럼:목련 앞에서

2014-06-0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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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 <수필가>

오늘 ! 그 자체로 매양 웃을 수 있는 나를 망각하고 한나절 풀숲에 바람 스치듯 시간을 갈라 먹었다. 세련된 연극인같이 숙달된 몸짓과 말 짓으로 하루를 어려움 없이 연기해 낸다, 철없는 참새처럼 노련한 할미처럼 곱게만 길들여질 수 없는 생활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 보다는 슬픔과 괴로움에 더욱 민감하고 세밀해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편협하게 다져진 모순의 질을 분해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절대 거부하면서도 또한 현실로 받아 들여야 하는 긍정적 괴로움 때문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마저도 스스로 탈취해 버린다. 그것이 진실이고 진실인 것 같아서ㅡ 인생이라는 일반적 단어를 토로할 수조차 없는 작은 존재임을 때때로 깨달으며 애꿎은 하늘만 흘겨야 한다.
창밖은 다정하다. 창틀에 박힌 채 숨 쉬는 유화보다 하얀 물감으로 화장한 목련을 원시안으로 더듬는다. 자애롭고 고결하고 진열시켜 본다. 여름날의 혹독한 더위와 가을밤의 그 쓸쓸한 고독과 그리고 살을 에는 아픔의 겨울을 참고 견디어 오늘을 탄생하는 위대함까지도 기꺼이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름답고 고상한 낱말들이 무색한 시절이 곧 있음을 슬퍼해야 한다.


초록 잎사귀의 부축도 거부하듯 홀로 강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위엄과 하얀 자태를 오만하게 과시하고 약한 봄빛을 유혹하던 그 거만한 아름다움이 다하기 전에 거짓과 위선의 두루마리를 벗기우 듯 하나 둘 분해되어 돌아눕는 그 모습은 애처롭고 허무하다는 말 대신 추하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언어를 동반한다 해도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어디에든지 종말은 오는 것을 또 한 번 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직으로 평면으로 한가지의 모양도 없는 하루하루를 삼켜 버리면서 두툼한 눈꺼풀 위로 대기하는 찬연한 햇살을 한 번쯤이라도 진심으로 맞아 주었던가? 애착도 미련도 없이 다만 순간을 존재시키기 위해 만족 해 하는 나날들이었다면 입으로 눈으로 귀로 피부 속속들이 스며드는 그것들을 순간의 모양과 처지와 멋을 위해 분장하고 가증스레 나서지나 않았는지 모른다.

한낱 순간을 위한 거짓된 행위와 노력과 기도를 외우지 않았다고 숙연히 말할 수 있겠는가? 다시는 돌아서서 입맞춤도 손짓도 할 수 없는 오늘과 이 순간을 위해 떳떳이 종말과 마주 설 수 있겠는가? 조금만 있으면 추하게 드러날 한 겹의 비밀을 목련은 감추고 서 있다. 하지만 목련은 다시 소생하는 그 날을 기다리기에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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