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집] 독립운동가 이갑성 선생 아들 이태희씨

2014-03-1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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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사랑의 정신 잊지 않았습니다

▶ 나라의 소중함과 희생 강조한 아버지 뜻 되새겨

“가장 불쌍한 민족은 나라가 없는 민족입니다.”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3년간의 옥고를 치른 이갑성 선생(1889-1981) 아들인 이태희(82,영어명 John Taehee Lee)씨는 아버지가 늘 강조하셨던 나라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1952년 버클리대학 유학을 와 62년간 미국에서 지냈지만 이태희씨는 아버지가 물려준 나라사랑의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요즘엔 나라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나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되뇌였다. 지난 72년부터 거주해온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인터뷰를 한 이태희씨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펼친 노력을 지켜보라"면서 "후세에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3.1독립운동은 세계 만방에 한국이 독립국가 자격이 있음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라면서 "해마다 3,1절엔 아버님에 대한 생각으로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에 나가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등으로 그날의 뜻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95주년 3.1절을 맞은 이태희씨는 “아버지는 가족도 잊고 나라의 독립만을 생각하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2층 저택에는 수를 놓아 만든 독립선언서와 ‘잊지말자 3.1정신 포스터’, 이갑성 선생 친필의 ‘3.1정신’ 현판,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서울 태화관에서 가진 3,1독립운동 준비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 등 온통 3,1절 관련자료들이 벽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태희씨의 부인 이(김)형옥(영어명 Judy Lee)씨는 "독립선언서 병풍은 부산의 십자매회 소속 수녀들이 만든 것"이라며 "시어머니(최 마리아)께서 보내주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희씨는 아버지 이갑성 선생이 신간회 사건으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상해로 망명, 독립운동을 하던 때인 1932년 출생했다. 그는 중국에서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독립활동을 지켜봤다.

1946년 가족과 함께 귀국한 그는 서울공대 재학중 학도병으로 18세에 한국전쟁에 참전, 여러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그때 중공군의 박격포공격으로 손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태희씨는 죽을 고비에도 생명을 건진 것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님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했다. 버클리대학을 졸업한 그는 버클리 로렌스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은퇴했다.

1959년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에서 안병주 목사 주례로 결혼을 한 이태희씨 부부는 이재경,재은(안과의사) 두딸과 아들 재환(건축가)씨를 두고 있다.

<손수락 기자>


수를 놓아 만든 독립선언서 병풍 앞에선 이태희씨와 부인 이(김)형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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