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 최 정 / 화가 l 봄, 할머니 바람 났네

2014-03-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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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나는 남편 눈 살살 피해 다니느라 고달프다. 지구 중력의 법칙을 적나라하게 증거하는, 장독 항아리 만한 내 엉덩이를 애구구 기합소리와 함께 들어 올리다가도 남편이 옆에 있음을 감지 하는 순간, 무지렁이인척 하며 목숨 연명하는데는 이력이 난 거렁뱅이 처럼, 마치 변소가 급해서 서둘러 일어섰던 시늉을 하며 서둘러 남편의 시야 밖으로 줄행랑을 친다. 가뭄이니 어쩌니 한숨 소리 깊어도 오는 세월은 막을 수 없어 이즈음 뒷마당을 나가보면 눈이 휘둥그레 해 질 정도로 온갖 새순과 꽃들이 휘황찬란하다. 수선화는 이미 졌지만 동백은 여전히 줄지어 피고, 며칠 사이에 개나리가 만개했다. 겨울 내내 죽은 듯 숨죽이고 있던 돗나물의 여리고도 힘찬 연둣빛 새순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학생들이 튜브에서 짜낸 초록색의 설익음에 늘 한숨 쉬다가도, 그럼 그렇지, 하느님의 연두색, 초록색을 능가하는 녹색이어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질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모두에게 너그러운 마음이 든다.

목디스크 수술을 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가지 일을 즐길수 없게 됐다. 그림, 책, 그리고 흙장난. 이걸 못하면서 내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걸까, 자신에게 자문할 정도다. 지난 번 8피트 짜리 그림을 사간 사람이 10피트 짜리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일초도 망설임 없이 이제는 몸이 말을 안들어 큰 그림을 안그리겠노라고 거절했을 때도 하나도 아쉬운 맘이 없었는데 파릇파릇 손을 내미는 돗나물을 바라보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게다가 봄이라서로 짝을 찾느라 그러는지 들려오는 새소리는 얼마나 싱그러운가.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새소리도 여러가지다. 짹짹, 쪼르르르, 빗쫑빗쫑... 어찌나 예쁘고 순결한지 ‘참 아름다워라’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황창연 신부님의 말씀이, 여자는 하루에 이만 오천단어를 쏟아내야 하는 구조라서 멸치 대가리 떼다 말고도 멸치보고 ‘얘야, 넌 삐쩍 마른게 성당의 루시아 자매하고 어쩜 그렇게똑 닮았니?’하며 혼잣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해서 웃었는데 나야 말로 새순을 보면서 얘야, 넌어쩜 이렇게 예쁘니? 양귀비인들 아무리 이렇게 예쁘겠니?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잊지 않고 또 와줘서 고맙다. 정말 고마워.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눈에 거슬리는 잡초 하나 패내고, 친구 갖다 줘야지, 하고 나물도 뜯고, 하다보면 어느 새 에고고, 신음소리 나오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 나름대로 증거를 인멸 시키는데 칠칠치 못해 늘 꼬리를 잡히는 나는 쓸데없는 짓이나 하면서 밤낮 몸 아프단다고 어린애 야단맞듯 남편한테 혼난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 자연이 아니라 생명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린 아이를 얼르며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하는데 자연의 생명이야 말로 다이아몬드를 준들, 애플의 주식을 준들 살수있는 게 아니다. 이 동네는 IT 산업때문에 젊은 부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거리를 다니다 보면 급한 사람, 화난 사람이 많이 눈에 띄인다. 코스코에 가보면 줄 짧은 캐쉬어를 찾느라 모두들 눈이 벌게 있다. 손해 안볼려고 핏발 선눈으로 서로를 재보고, 행여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일까, 내가 덕을 볼 사람일까, 알게 되면 오히려 성가실 사람일까, 생각들이 복잡해 뵌다. 잠깐 밖에 나가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일 수있으면 좋으련만. 여기 봄 바람난 할머니도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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