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내면에 마네킹이 하나씩있기 마련이다. 자신은 아니로되,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만 위한 (과장된)또 하나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늘 바라는 바, 행복이란 원한다고해서 또 원치 않는다고해서 오고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늘 두개의 공간에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하나는 이상을 내려 놓고 살아가는 현실… 다른하나는 이상 속의 삶… 그러니까 허상으로과장된 마네킹이다. 우리는 늘 태엽을 감아놓은 마네킹(인형)처럼 행복을 내면 속에 고착시켜 놓고 살아가지만 사실 그 행복이라는 것이야말로 태엽이 풀리면서 재현되는,거꾸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미망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모습과 닮은, 쇼윈도우 속의 마네킹과 마주칠 때가 있다. 우리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직설적인 욕설이 그렇듯… 가끔은 노골적으로 과장된(근사한)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일까, 아니면 우리 속의 마네킹일까?꿈과 현실을 오락가락하면서 대체로 우리가사랑에 빠지는 것은 꿈일 경우가 많다. 마네킹과의 사랑… 시체 애호증… 이런 섬뜩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들이야말로 소설속에서나 등장하는 허구일 뿐이지만, 인간이 얼마나 열망과 좌절의… 모순의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역설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번 한 주는 온통 김연아의 뉴스로 도배된 한 주였다. 뱅쿠버의 피겨 여걸이 올림픽 2연패 코 밑에서 패퇴했기 때문이다. 김연아 본인은 물론 온 국민의 안타까운 마음이야 판결의 시비가 더해진 것이어서 더 쓰라리고 아팠을 것이었다. 김연아는 의연해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놓쳐버린 정상이…금메달이 아쉽기만 한 것은 웬일일까? 아마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습이… 아니 어쩌면 우리가 붙들고 있었던 것이야말로 김연아보다는 김연아로 대신된 허상…코펠리아(인형)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코펠리아’는 사람 크기의 춤추는 마네킹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발명가 코펠리루스박사가 지은 것인데, 물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인형을 주제로 한 오페라와발레, 연극 등은 모두 소설가 호프만(1776-1822)의 작품에서 나온 것인데, 호프만은인형과 사람과의 사랑 등… 그로테스크한작품들을 많이 썼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 들리브(1836-1891)의‘ 코펠리아’ , 오펜바하(1819-1889)의‘ 호프만의 이야기’등이다.
인형을 만드는 괴퍅한 노인 코펠리우스는자기가 만든 밀랍인형 코펠리아가 언젠가는생명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날 거라고 굳게믿고 있었다. 예쁜 코펠리아는 언제나 발코니에 앉아서 책을 읽곤 했다. 지나가던 이웃처녀 스와닐다는 늘 책만 보는 코펠리아의정체가 궁금해지고 약혼자 프란츠가 코펠리아에게 구애하는 광경을 본 뒤로는 질투로마음이 혼란해 져 버리고 만다. 어느날 코펠리아가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뒤 안도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결국 고뇌에 빠진 스와닐다… 프란츠, 코펠리우스 박사… 모두가 하나의 인형으로 인해 허탈해 진다는 내용이다.
지난 주 (발레 음악)’코펠리아’를 들으면서삶과 인형… 김연아와 피겨 등을 생각했다’삶은 말 그대로 곡예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빙판 위의 곡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피겨가 그렇듯… 삶이 곡예이고 모험이기에안타까운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 것은 꼭 1등 만은 아닐것이다. 찬사는 일시적일 뿐, 더 큰 감동은아픔이 우러나는 현실… 도전이 주는 용기다. 굿바이 코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