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임남희 ㅣ 고맙습니다

2013-09-1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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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남편과 함께 유학 길에 올랐을 때에는 우리가 미국에 정착하게 될 줄도, 정착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될 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전까지는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던 터라, 타국에 와서도 열심히만 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고 뜻밖의 일들이 일어났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각자의 일과 공부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했던 몇 년의 시간이었다. 홀로 뉴욕에서 일하면서 나는 허전함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라톤에 도전했었다. 내가 출전했던 대회들은 마라톤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민망한 짧은 레이스들이 전부였지만, 최종 목표인 마라톤 완주를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크고 작은 대회에 참가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9년 필라델피아 마라톤이었다.

나는 짧은 레이스를 마친 후, 마라톤에 참가한 동료를 응원하기 위해 Final 지점에서 선수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꽤 좋은 기록으로 들어오고 있는 참가자들 중에 다리 한쪽에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선수가 보였다. 멀쩡한 신체로도 하기 어려운 마라톤을 좋은 기록으로 마친 그 선수의 당당한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내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당시 나는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힘들다고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순간 그런 내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금 힘들다고 실망하고 좌절해 있는 나는 투정부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한쪽 다리를 잃고 겪었을 좌절과 고난을, 상실을 딛고 일어서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흘렸을 땀과 눈물을 생각하니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게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건강한 신체와 직업이 있으니 감사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감사하고… 내게는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감사의 마음은 내 마음을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요즘도 가끔 그 선수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때의 감동을 되새기며 말해 본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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