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유난히 좋아했다. 상당한 미인이셨던 엄마의 아리따운 피부, 빛이 들어가 있는 듯 반짝이는 진한 눈동자, 얌전하고 날씬한 다리, 절세 미인의 콧등, 눈에 넣어도 안아플 정도로 어여쁜 분이었다. 너무도 여성적인 엄마의 상아색 등허리를 ‘Sexy back’이라고 불렀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중병도 이기고 다시 건강해지듯, 죽음이라는 상태에 잠깐 빠진 엄마를 다시 구출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한 것은 엄마가 다시 살아오시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것 말고 천국에 살아계시는 것 말고 몸이 살아서 다시 오시는 것 말이다. 그 호된 ‘죽음’이란 병에서 불가사의로 치유되어 신나게 퇴원하듯이, 아이들이 섬머캠프에 갔다가 조금 그을려서 다시 집에 오듯이 그렇게 이 삶 속으로 다시 오시는 것 말이다. 이 강렬한 그리움에는 그분이 살아오시는 것외에는 해답이 없었다.
보들레르는 한 미술평론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삶에게 "나자로야, 일어나라(Lazare, lève-toi!)”라고 명하는 자, 부활적이고 환기적 기억(mémoire résurrectionniste et évocatrice)을 통해 죽은 것을 살리는 자라고 말한다. "너는 내게 진흙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금으로 만들었다"라는 그의 연금술적 미학은 진흙 속에서 금을 추출하듯 죽어질 순간 속에서 영원한 ‘미’를 추출해내는 작업이다.
연금술(Alchemy)은 고대부터 내려온, 금이 아닌 납이나 잡금으로 금을 만들어내는 기초화학 기술이다. 잡금에 묘약을 타서 끓이든, 증류시켜 정제를 하든, 재료의 물리적 변화가 아닌 재료의 본질(essence)이 바뀌는 화학적 변화이다. 이는 그러므로 변형(transformation)이 아닌 변성(transmutation)의 미학이다.
감정의 불로 지핀 절정 상태 속에서 죽어있는 시간을 살려내 놀라운 감각들이 생생한 전율로 찾아오게 하는 특별한 기억의 기술, 황홀한 기억이 flashback처럼, 죽은 과거에서 뛰쳐나와, 실제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보다 훨씬 강렬하게 나를 엄습하고 에워싸게 만들며 내 존재가 그순간과 함께 녹아버리는 마법을 통해 나는 엄마와 함께했던 경이로운 사랑의 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뜨거운 사랑의 에너지로 빛나는 ‘초시간성’에 도달하는 것이 내 글쓰는 작업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