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애연 l Can you help me? Please!

2013-06-0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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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해외로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것은 오직 “늙으면 때는 늦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호스피스들이 흔히 경험하는 것은 “남은 인생을 여행도 하면서 즐기려고” 했는데 은퇴한 지 1년이 되자 그만 암 선고를 받고 몇달 남지 않은 시간을 투병하다가 인생이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지가 멀쩡할 때, 그래도 남의 부축 받지 않고 혼자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여행할 수 여건이 되어 참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축복받은 것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영어를 할 수 있으니 어디를 가든 통과가 되는 미국인 거만증이 좀 없지 않아 있다. 한번은 독일 쾰른 대성당에 갔다가 성당 안 안내문들이 모두 독일어로만 되어 있어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자만 영어로 된 것들이 있었다 물론 돈주고 사야 했지만. 사실 화가 좀 났었다. 다른 외국어는 할 수 있으나 왠지 독일어는 배우고 싶지도 않았고 전혀 몰랐다. 다행히 도시에 사는 독일인들은 하나같이 영어를 잘하니 전혀 구애받지는 않았다. 로마에서도 영어로 다 통하니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번은 주택가에서 조깅하던 중 길을 잃어 헤맸다. 여행 준비 중 이탈이아어를 좀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듣는 그들은 무표정이었다. 더구나 비를 맞고 서있는데도 우산도 씌워줄 줄도 모르는 냉정한 사람들이었다. 스페인어를 겨우 사용해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불어도 몇십년만에 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다.

몇년 전 이스라엘에 갔을 때였다. 렌터카를 돌려주기 전 텔아브 공항 정류소에서 평소처럼 크레딧 카드를 넣고 기름을 채우려는데 기계 화면에 영어가 아닌 전혀 모르는 “히브리어”가 떠올라 당황스러운 나머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를 어쩌나 하며 얼른 뒤돌아보니 어느 남자가 기름을 넣고 있었다. 나는 너무 태연하게 영어로, “Can you help me? Please!” 했다. 그런데 답은 “of course I will help you”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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