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해연 l 감나무

2013-02-2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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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소리에 뒷마당의 나무들은 새싹 맺기에 바쁘다. 작년의 많은 열매들이 끝난 후의 시원함에, 매년 오히려 더 싱싱하고 튼튼한 싹을 돋운다.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좋아해 감나무를 제일 사랑한다.

어김없이 가을이 되면은 얼마나 많은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지, 경이로움에 감탄이 저절로다. 가을 아침의 햇살에 오동통 살이 오른 채 반짝이는 감을 바라보는 그 기쁨은, 행복하다는 말이 그저 흘러나온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가 부러울 거고 무엇을 더 바라랴 싶다. 온전한 자연이 주는 조건없는 감사와 보답이다. 하얀 감꽃이 피었다, 살짝 보여준 밋밋함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는 단단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작은 연초록의 빛에서 살금씩 햇빛과 어우러지며 여물어가는 느긋함과 함께, 속 든든한 알맹이를 키우면서 감사의 무게에 얼굴을 붉히면서 익어간다.

주황색의 겸손함은 노랑과 빨강이 섞여져야 만들어지는 것이고, 뾰쪽하지 않은 채 자리잡은 태는 싸우고 싶지 않다는 동그란 평화이다. 그 멋진 자태에 반해 지나가는 이도 그냥 들러 칭찬 하나에 주황색 감나무가지와 바꾸어 들고가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줄 자랑에 늦은 가을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의 수확도 한없이 달다. 보기만 하여도 단번에 알아차릴 그 단단함과 달콤함과 풍요로움이다. 한 번쯤은 목소리 내어 자랑하여도 결코 흉스럽지 않은 데도, 마냥 그 자리에서 때가 되면 싹 틔우고, 꽃 피고 또 열매 맺는다.


나의 인생도 열매 맺는 삶이 되고 싶다. 그 겸손도 함께 배우고 싶다. 이 때문에 아련한 초조감으로 긴장시키며 생각에 잠기게 하나보다. 나의 무어 어디 부족하여 잘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봄은 오고 또 화려한 봄날은 갈 것이다. 가을은 또 올 것이지만 열매 맺지 못한 채 그냥 서 있다, 단풍들어 떨어져서 그냥 민둥숭이로 벌거벗은 채 서 있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작은 열매라도 맺어 무언가에 쓸모가 되고 작은 기쁨이라도 되었음 하는 마음에 서두른다. 세월은 자꾸 지나갈 거고, 어쩌면 나는 없어도 이 나무는 그냥 그 자리에서 또 감을 맺으면서 나보다 더 나은, 오래 겸손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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