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동안 한결같이 우정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가 다녀갔다. 늘 신세진다며 짧은 일정으로만 왔었는데 이번에도 짧게 오면 친구사이 끓을거라는 나의 협박에 못이겨 큰 맘 먹고 보름 일정으로 다녀갔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여고시절부터, 이젠 아내라는, 엄마라는, 며느리라는 위치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내가 지금 왜 열었지? 하고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이 시점에, 세월이 세월인 만큼 어떤 일들은 그 친구는 기억하는데 내가 못하고, 어떤 일은 내가 기억하는데 그 친구가 못하고…. 밤새워 배꼽이 빠질 정도로 깔깔거리기도 하고, 서로 마음 아팠던 일들에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건만, 친구를 보내고 나니 아직도 못다한 말들이 왜 이리 많이 생각나는지….
우리 둘이 얼마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으면, 한국말이 서툰 아들 녀석이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냐?”고 궁금해하며 끼어들기에 “때는 이때라”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약간의 과장과 살을 좀 보태어 우리의 우정을 과시하면서 화려하게 해주었다.
“난 노래만 부르면 왜 뽕짝이 되지?” 하며 세계의 모든 노래를 간드러지게 소화해내고, 같이 있으면 기분 우울했던 사람도 금방 즐겁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는 친구, 그래서 잠시 왔다갔음에도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친구.
고등학교 시절 감당하기 힘든 일로 방황할 때도 든든하게 내 옆을 지켜주었고, 세상 물정 잘 몰랐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는 모진 말로 쓴소리도 해주고, 잘 나갔던(?) 내 지난 시절을 알기에 지금 힘들어하는 모습에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해주고, 전공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하는 내게, 자랑스럽다며 , 넌 할 수 있다고 아낌없이 격려를 해주고 간 너.
이제 우린, 하나, 둘 아픈 구석도 생기고, 서로의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도 보면서 인생의 탑을 쌓아가겠지. 하지만 세월이란 이름 위에 너와 나의 아름다운 우정의 탑이 있기에 인생의 탑도 값질 것이라 생각한다.
눈물을 보여주기 싫어 뒤도 안돌아보고 간, 야속한 친구야! 우리 또 언제 다시 만나 매듭도 풀지 못한 우리들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