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7-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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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년 하다보면,
구두를 닦거나 택시를 몰거나
식당 주인도 반 점쟁이쯤은 된다
닳은 구두굽만 보고도 몸속의 옹이를 꿰뚫는다
표정만 봐도 어디로 갈지 뭘 먹을지
어렴풋이 살아본 것 같은 전생(前生)이 보인다
그냥, 척 보면 아는 것이다
과거를 들킨 어떤 사람은
얼굴 붉히며 마음 상할 일 없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헛살았다고
뒤늦게 후회할 필요는 없다
뿔뿔이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부지런히 도달하다보면 그게 한 길인 것이다
끝장에는 만나는 것이다

- 정병근(1962 - ) ‘구두닦이와 택시기사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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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을 30년쯤 가다보면 반 점쟁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택시기사들이 내가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이라는 걸 척 알아맞히곤 했나 보다. 재미있게 썼지만, 큰 깨달음이 무겁게 전해온다. 먼저 성공한 것 같던 사람이 생각보다 늦기도 하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먼저 결승점에 도달하기도 한다. 실패하고, 고민하고, 다시 일어나고, 먹고, 싸면서 끝장에는 빈손으로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인생에 통달한 도사들이 되는 것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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