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많은 나에게 아버지뻘 되는 큰형부가 계셨다.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넓은 농토와 임야를 자작하며 관리하던 성실한 분이셨다.
내가 두 살 적에 큰언니와 결혼한 후 자주 집에 들려 나를 데리고 밭일을 나가셨다가 잠이 들면 나무그늘에 뉘이고 일을 계속하셨다고 했다.
이민 떠날 즈음에 육순을 넘기신 형부가 서운해 하며 떠나지 말고 함께 살자고 어린아이처럼 졸랐다. 그 형부가 돌아가셨다.
형부가 돌아가신 후 집안에 있던 궤 속에서 거액의 현금뭉치가 나왔다고 한다. 선친에게 상속받은 전답과 산야를 고스란히 지키더니 개발붐에 적잖은 돈을 챙겨 궤짝에 보관하고 계셨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어린아이들 가르치느라 분필가루에 목이 잠겨 퇴근길에 찬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싶어도 애써 참으며 집에 돌아와서야 냉수로 달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자신을 위해서는 돈 몇 푼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떠나시다니, 가슴이 아팠다.
고향을 방문했을 때 형부에게 미국에 오시면 그랜드 캐년과 옐로스톤을 관광시켜 드리겠다고 제의했더니 텔레비전에서 다 방영해 주는데 무엇 하러 돈들이고 고생하느냐며 웃으셨다. 그러나 제대로 여행 한번 변변히 못해본 형부도 원치 않는 하늘여행길은 피할 수 없었나 보다. 때가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왕복티켓이 아닌 편도로 가셨다.
장 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야말로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했다. 형부세대만 해도 혈연이라는 질긴 인연의 사슬에 얽매이는 구속을 당연시하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분들이라고해서 간혹 연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왜 없었으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추구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가족이나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선열들이 있는가 하면 형부처럼 처자식을 위해 개인적인 욕구를 기꺼이 절제하신 분도 있고, 본인의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회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가족이란 유대마저 허술해 진다. 공익보다는 이기가 최상가치로 자리매김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보람된 삶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