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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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老)부부의 쓰레기봉투

2011-04-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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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숙 (페닌슐라 한인여성회 고문)

나는 아침이면 될 수 있는 한 걷도록 노력한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에 걷는 코스를 시에서 잘 만들어 놓았다. 걸으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나름대로 살아온 날들의 반성과 살아갈 날들의 멋진 성을 세웠다 허물었다 한다. 어떤 날들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젊은 아이들처럼 요즈음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 다음 주 화요일에는 예쁜 아줌마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 드려야하나 생각하며 다리도 손도 힘차게 움직이며 걷는다. 나는 취미 삼아 라인댄스를 가르친다.
그런데 매번 걸을 때마다 미국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난다. 그 순간마다 내가 어찌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두 분의 손엔 항상 쓰레기 봉지가 들려있다. 내가 걷는 코스를 다정히 얘기하며 떨어져 있는 휴지, 물병, 깡통들을 주우신다. 두 분은 만날 때마다 미소로 굿-모닝! 하고 인사한다. 그 때는 항상 쓰레기봉투가 깨끗해 보였는데 돌아가실 때는 두 분의 봉지가 그득하다.
그때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내 마음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나도 적지 않은 나인데 분명히 저분들은 나보다 더 나이가 드셨을 텐데 얼마나 건강해 보이냐 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도 하고 봉사도 하시니 건강 하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 아침에도 집에 가면서 노부부를 보았다. 걷기엔 꽤 먼 곳인데 집까지 걸어가고 계신 게 아닌가? 나는 더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걷는 운동 한답시고 나는 이 가까운 거리를 차로 다녔다. 그 분들이 있고 그분들이 가르친 후손들이 있는 한 미국은 끝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일 것이다.
내가 정말 미국에서 잘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분들이 있어 고맙고 살아가는 힘도 생긴다.
나도 오늘 집 앞 도로라도 봉지 들고 치워 보아야겠다. 누가 쓰레기 버리면 나는 속으로 어떤 애야 욕하면서 치웠는데 오늘부터 나도 웃으며 주어야겠다. 부디 다정한 노부부가 건강히 오래 오래 우리 동네에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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