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 칼럼/ 다시 쓰는 카리스마 리더십 (15) 집단책임의식
2011-04-16 (토)
카이스트는 한국 대학의 자존심이다. 영국 더 타임스의 세계대학 평가(공학/IT분야)에서 카이스트는 한국의 대학 중 유일하게 25위 안에 들었다(2008년 34위, 2009년 21위). 이러한 놀라운 성과는 서남표 총장의 부임이후 거둔 업적으로 인정되어왔다.
그런데 지금 카이스트가 개교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생 4명과 교수 한 사람이 학업과 연구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한 일이 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결과 서 총장의 리더십이 학 내외를 뜨겁게 달구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서 총장의 리더십은 “경쟁을 통한 발전”으로 압축된다. 그는 ”경쟁의 논리“야 말로 대인과 조직, 사회 전체의 실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이번 카이스트에서 일어난 일련의 자살 파동은 서 총장식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와 불협화음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서 총장의 “경쟁을 통한 발전”에 대한 신념은 미국 유학생활을 통하여 터득한 것이다. 고교생 서남표는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그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 유학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여 힘들었던 그는 혼자의 힘으로 절치부심 노력하여 고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MIT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고, 명문 카네기멜론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후진국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년이 학문적 경쟁을 통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다. 공학 박사가 된 그는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했다. 모교인 MIT를 위시하여 미국 국립과학재단 공학 담당 부총재까지 거치면서 3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널리 인정을 받았다. 학자로서 미국에서 큰 업적을 이룬 그는 여생을 모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카이스트의 교수가 되었고 2006년에는 제13대 카이스트 총장이 되었다. 그가 카이스트 총장에 취임하자 말자 제일 먼저 들고 나온 정책이 바로 “경쟁을 통한 발전”이었다.
그런데 이번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으로 서 총장의 리더십은 큰 도전에 부딪치게 되었다. 여론은 여러 가지로 분산되어있지만 현재로는 사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러나 실제로 카이스트 문제는 서 총장의 사퇴만으로 깨끗하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 해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개인 경쟁을 중요시 하는 아메리칸 정신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유럽식 생존 본능인 “집단책임의식”을 주창한 제러미 리프킨의 논의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리프킨은 그의 저서 “European Dream”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개인의 책임을 중요시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개인 경쟁을 통해 그들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 결과 미국의 개인주의는 강한 자에게는 혜택을 주고 약한 자에게는 불리함을 준다. 반면에 유럽인들은 집단책임의식이 강하다. 그들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공평한 이익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리프킨의 논의를 자세히 경청하면 카이스트 문제의 해법이 보인다. 서 총장의 미국식 개인주의에 입각한 경쟁의 원리를 궤도 수정하여 유럽식 집단책임의식으로 방향을 틀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연 생태계 중에서 “집단책임의식”이 가장 발달한 줄기러기의 예를 들어보자. 줄기러기(Bar-Headed Goose)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내륙에 서식하면서 봄이 되면 강한 바람을 타고 9,000미터 고도의 에베레스트를 횡단하여 티벳트에 머물다가 가을에 다시 남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철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 천, 수만 마리의 줄기러기가 산소가 부족하고 칼바람이 부는 고도 9,000미터의 에베레스트 산을 넘어갈 때 한 마리의 낙오자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는다. 신비에 가깝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철저한 공동체의식으로 뭉쳐진 “집단책임의식” 때문이다. 차제에 카이스트가 지나친 “개인 경쟁”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중요시 하는 “집단책임의식”으로 하나가 될 때 서 총장의 리더십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또한 역경을 돌파
했던 유대인의 생존법이었다는 것도 아울러 밝혀둔다.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