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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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본 뉴올리언스

2011-03-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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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칼럼

필자는 전국 이중언어 교육자 연례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에 뉴올리언스를 다시 다녀왔다.

주지하다시피, 뉴올리언스는 2005년 8월, 카트리나 폭풍으로 인한 대홍수로 인구의 3분의1 이상이 생업을 잃거나, 사상자가 되었거나, 연방 비상관리청의 늑장 대책으로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이 초생달의 도시는 거의 정상으로 복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규모의 학술대회가 3월과 4월에도 이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주요 산업인 관광산업이 거의 본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 강 하구에 위치해 있으며 멕시코만에서 불과 150마일 상류에 위치한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로서, 본래 전체 도시가 미시시피강 둑보다 5피트 가량 낮게 설립된 도시이다.

폭풍 후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폰차틀레인 호수 북쪽의 민가들은 거의 다 복구 되었으나, 집주인은 생업을 따라 타지로 떠나고 없어 밤이면 불꺼진 집들이 간혹 남아 있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교육구를 프랑스 가톨릭식을 따라 교구(parish)라고 부르고, 미국 전체에서 영어-불어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유일한 도시이다.

뉴올리언스의 동쪽으로는 예전처럼 미시시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필자는 Mark Twain의 작품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작중 인물들처럼 미시시피강 위로 증기기관선을 타고 뉴올리언스를 한바퀴 돌았다.

멀리 미네소타주를 위시하여 미국의 31개주로부터 미국 전체 강물의 3분의2를 받아 뉴올리언스를 L자 모양으로 끼고 도는 이 미시시피강(세계 3대 강)에는 유럽, 중동, 아랍 등 각국에서 온, 설탕, 담배, 커피 수송을 위한 화물선들이 정박하고 있어 세계 5대항의 면모를 여전히 과시하고 있었다.

또한 뉴올리언스에는 하루에 6,200만파운드의 설탕을 정제하는 100년 전에 세워진 Domino 설탕 정제공장이 있으며, 바닷물이 없고, 미시시피 강물을 여과하여 생활한다고 한다.

프랑스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융화된 거리로 유명한 뉴올리언스의 심장인 French Quarter 지역(Canal St., Rampart St., Esplanade Ave.와 미시시피강 사이의 약 70 블락 정도 지역)은 다행히도 카트리나로 인한 대홍수의 피해는 면해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Tennessee Williams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었던 관계로,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지게 된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영화로웠던 옛 시절을 자랑스럽게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각계각층의 다문화 출신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생활하며, 다소는 퇴폐적이고 자유분방하지만, 여행객들은 프랑스풍, 스페인풍의 문화를 한 곳에서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뉴올리언스 특유의 cajun식 (Crawfish Etouffe, seafood gumbo, jambalya 등) 음식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을 즐겨 찾고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고향답게, 가는 곳마다 재즈와 경쾌한 cajun식의 자이데코(아코디온, 기타, 빨래판 소리를 혼합한 음악)의 선율과 거리의 악사들이 행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마침 Mardi Gras(Fat Tuesday)가 시작되어 보라색, 주황색, 초록색으로 단장하고 행진하는 가면 퍼레이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선물가게가 된 Tennessee Williams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썼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또한, 예전에는 Faulkner의 집이었던 ‘Faulkner서점’을 들러, 그 곳에서 쓴 그의 첫 소설 ‘Soldier’s Pay’를 사들고 돌아왔다. 뉴올리언스는 여전히 마음 푸근하고,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클라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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