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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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신염과 패혈증

2011-02-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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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하다 보면 가끔 아슬아슬한 케이스를 만난다. 5년 전 일이다. 30세 된 여자 환자가 가끔 위가 아프다고 위 내시경을 받겠다고 방문했다. 그런데 내시경을 받기 전 신체검사를 했더니, 100.8도로 약간 미열이 있고 옆구리가 좀 아프다고 했다. 또한 혈압이 90/50으로 약간 낮게 나왔다. 그래서 위 내시경을 다음에 하기로 하고 열의 원인을 조사하자고 했다.

소변검사를 했더니 백혈구가 소변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환자는 미소를 띨 정도로 건강해 보였으며 별로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환자에게 “이것은 세균성으로 생긴 신장염 즉, ‘신우신염’(pyelonephritis)이라는 병이다. 보통 방광염으로 시작되었다가 세균이 수뇨관을 타고 콩팥으로 오르게 되면 신우신염이 되는데 이때 빨리 치료해야 된다.

보통 가벼운 증세 때는 외래로 다니면서 항생제로 치료가 시작되지만 심한 경우는 꼭 입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입원해서 강한 항생제로 치료하지 않으면 콩팥에 있는 세균이 피를 따라 온몸에 퍼지면서 패혈증(sepsis) 세균이 내는 독소(endotoxin)가 환자의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쇼크(shock) 상태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참고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요로감염과 신우신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다행히도 환자는 내 말에 동의해서 근처의 큰 병원 응급실로 급히 갔다. 응급실까지의 도착시간은 불과 20~3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응급실의 담당의사에게서 급히 전화가 왔다. 그 환자가 응급실에서 기다리는 중 갑자기 쓰러져서, 혈압을 재어보니 40 이하로 급성 쇼크에 빠져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겨우 살렸다는 것이었다. 그 후 중환자실로 입원시켜, 강력한 항생제 등으로 며칠간 치료하여 환자는 건강한 상태로 퇴원하였다. 며칠 뒤 환자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왔었다.

지금 생각하여도 참으로 아슬아슬한 케이스였다. 약간 열이 있는 정도 외에는 별 증세도 없이 겉으로는 전혀 아파 보이지도 않았는데, 나의 직관으로 혹시라도 나중에 패혈증으로 인한 독소 쇼크에 빠질지 몰라서 응급실에 보냈는데, 환자가 10분만 늦었어도 생명을 잃을 뻔한 것이었다. 여기서 보듯이, 의사의 직관력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문의 (213)480-7770


차 민 영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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