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중혁명과 군부의 역할

2011-01-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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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루마니아에서 민중혁명이 성공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군부의 역할’이었다. 그해 12월16일 루마니아 서부에 위치한 티미쇼아라 시에서 발생한 민중시위는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수도 부쿠레슈티까지 확산되었다.

당시 이란을 순방 중이던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급히 귀국하여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21일 루마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청사 앞 광장에서 관제집회를 열고 연설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설 도중 폭발사건이 발생하자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집회는 시작 5분 만에 강제 해산되었다. 집회에 참석한 부쿠레슈티대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은 귀가하지 않고 차우셰스쿠 독재타도를 외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대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다음 날 아침 바실레 밀레아 국방장관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되었다. 세간에는 그가 차우셰스쿠의 발포명령을 거부해 총살되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2005년 진상조사에서는 밀레아 장관이 쿠데타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공산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쏘아 자살한 것으로 판명 났지만, 당시의 상황은 루마니아 군부가 차우셰스쿠에게서 멀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신임 국방장관이 추대되지만 그 역시 기울어가는 차우셰스쿠 정권에 연루되길 원치 않았다. 겉으로 그는 차우셰스쿠에게 충성심을 보였지만 시위 진압에 적극적이지 않았음은 물론 군사 쿠데타를 꾀하였다.

한편 부쿠레슈티 시내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계속됨으로써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신임 국방장관은 차우셰스쿠 몰래 전 군에게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중지하고 원대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루마니아 혁명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루마니아 혁명세력은 구국전선(National Salvation Front)을 조직한 후 루마니아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까지 장악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차우셰스쿠 시절, 국가 비밀경찰인 세쿠리타테(Securitate)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아 불만이 많았던 루마니아 군인들 중 일부가 귀대하지 않고 혁명세력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병은 물론 고급장교들까지 대거 합류함으로써 상 황은 완전히 혁명세력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혁명 이후 루마니아 언론에서는, 당시 루마니아 군부가 시민들 편에 서지 않고 차우셰스쿠의 명령을 계속 따랐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은 물론 루마니아 혁명도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언급했다. 이처럼 루마니아 민중혁명이 성공하기까지는 루마니아 군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는 엄청난 무리수를 둔 걸 보면 내부적으로 아주 급박한 사정이 있거나 아니면 핵을 가졌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북한의 군사지휘체계를 살펴보면, 현재 모든 권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집중되어 있어 당장에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김정일 사후에는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사후 국방위원회 산하의 인민무력부와 총정치국, 총참모부 그리고 보위사령부 간에 권력 주도권을 두고 큰 충돌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루마니아식의 급격한 체제붕괴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향후 북한에서도 루마니아처럼 급격한 체제전환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북한 군부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정오 UC 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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