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안전금고(safe deposit box)를 열어 놓고 각종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관해 두는 예는 흔한 경우이다. 때로는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기 위해서 좀 더 큰 사이즈를 열어 놓고 각종 계약서라던가 중요한 문서들을 보관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한인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안전금고를 현금 보관을 위한 용도로 쓰는 경우다. 적지 않은 액수의 현찰이 그것도 신권 발행 이전부터 모아온 100달러 지폐들이 차곡차곡 쌓여진 것을 발견하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오 노인은 은행에 안전금고가 있었다. 평소에 메디-캘과 SSI를 받던 오씨는 집 외 다른 재산은 전혀 없었다. 은행 잔고도 200~300달러를 넘지 않았다. 오씨의 전 재산은 생전에 살았던 30 만달러도 채 나가지 않는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 노인은 리빙 트러스트나 상속법원을 피할 수 있는 상속계획을 생전에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상속 법원의 절차를 밟게 되었다. 더 기막혔던 사실은 오 노인의 안전금고로 인해 상속법원 절차가 더욱 길고 복잡해 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은행 잔고를 적은 액수로 유지하며 정부혜택을 누려 왔으나 은행 금고에 수만달러의 현금과 금품을 보관해 왔다는 것이 오 노인의 사후 발견되었다. 상속계획 없이 사망한 경우, 은행이 법원 명령에 따라 안전금고를 열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는다.
법원은 고인이 유서를 은행금고에 넣어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서 ‘13100 청원’에 따라 은행이 금고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사후에 본인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 노출을 방지하고 경비와 시간이 소모되는 안전금고에 관한 절차를 벗어나기 위해 간략하게 안전금고를 열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 두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경우에 빚어지는 부작용이다.
한 노인은 지병이 악화되면서 막내딸에게 금고를 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한씨가 사망하기까지 막내딸은 안전금고를 열어 한씨에게 필요한 소소한 경비를 노인의 지시에 따라 충당해 왔다. 막내딸은 한씨 사망 후 안전금고에 있던 현찰로 장례식 비용을 충당하려 했다.
장례이전에 이를 놓고 위의 오빠 둘과 상의를 하던 중, 오빠들은 아버지 안전금고에 남아있는 잔액의 액수를 문제 삼았다. 오빠들은 아버지가 주거하던 집을 매매했고 매매한 액수를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소모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적어도 금고에 수십만달러는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막내딸은 아버지의 금고에는 약 2만달러에 달하는 현찰 이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막내딸은 사망하기 얼마 전 한씨가 라스베가스를 한번 다녀왔는데 한 노인이 라스베가스에서 현금을 도박으로 탕진했을 거라 추측했다.
이런 경우는 소송을 통해 쉽사리 해결될 경우가 아닌데다 결국은 자녀들 사이의 불신과 대립이라는 예상치 않은 결과만 남겨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아직도 상속계획이라 하면 부유층이나 특권계층의 전유물 정도로 여기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미국에서는 유서를 만들어 두어도 자신이 원하는 수혜자가 상속법원을 통해서만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다.
반면에 리빙 트러스트라던가 상속법원이 인정하는 법적인 서류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경우엔 상속법원 절차 없이 상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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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