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 칼럼 “탁월한 코칭 리더가 되라(62)비판과 폭로”
2010-12-25 (토)
12월 셋째 주다. 예수님의 강생을 축하하는 교회당 종소리가 힘차게 사방천지로 울려 퍼지고 있다. 일 년 동안 있었던 부족함과 실수를 자비의 종소리와 함께 흘려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시민의 발걸음이 가볍고 분주하다. 그런데 금년 연말은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대표 줄리언 어산지의 극단적 말과 행적 때문이다. 그는 특정 국가(특히 미국 정부)의 초특급 비밀이 담긴 외교 전문을 세상에 폭로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면서 전 세계 언론사의 주목을 받고 돈도 벌고 있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가 최근에 더욱 주가를 올린 것은 미국 국무성 산하의 외교관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위시한 각국 정상들의 개인 신상과 행적을 은밀하게 내사했다는 것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뿐 만 아니라 각국 지도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분별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형편이다. 어떻게 보면 어산지의 주장대로 국가의 기밀 문건을 전 세계에 폭로하고 비판의 분위기를 고조함으로써 정부와 지도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견제하고 바로잡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의 파장 효과다. 한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국가 생존에 관한 전략이나 비밀이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폭로됨으로써 국가 존립은 물론 세계의 질서 유지에 큰 장애가 올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secret)’이란 단어가 인간에게 의미하는 함축이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든지 남에 의해서 들춰지고 폭로되어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 져야 하는 요리와 같은 것인가. 가십과 수군거림을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는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인류의 평화와 사랑과 질서를 숭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기준을 갖는다. 예를 들어보자. 영국의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일반 대중의 호기심과 입방아만 절제되었을 지라도, 그리고 왕가의 사생활의 비밀이 적나라하게 폭로만 되지 않았더라도 다이애나 비는 객지에서 무모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세상에는 남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왜 그럴까. 첫째로 남의 사생활의 비밀을 파헤치므로 ‘대리만족’을 누리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상 심리’의 작동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에겐 유명 인사들이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불행을 지켜보며 즐기는 이상 심리가 있다. 그러므로 다이애나 비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의 비밀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비판하는 어산지의 행적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웃의 실수와 잘못에 대한 성경적 해법은 무엇인가. 충신 우리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다윗을 찾아와 충고하고 회개시킨 나단 선지자가 그 답이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취한 교정의 방법은 어산지처럼 직선의 방법이 아니었다. 나단의 방법은 곡선의 방법이었다.
첫째로 그는 우화를 가지고 다윗에게 접근했다. 우화의 효과가 무엇인가. 우화로 엮어지는 스토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극적 자아의 상태로 인도하는 효과가 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가난한 사람의 양 한 마리의 빼앗아 온 부자의 얘기를 듣는 순간 그 마음속에 선악을 분별하는 자기 인식이 일어났던 것이다. ‘공감의 시대’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이것을 ‘연극적 자기인식(dramaturgical consciousness)’이라고 불렀다. 둘째로 자기 스스로가 깨닫고 시인하도록 유도했다. 폭로에 의한 직선적인 비판은 필연 인격과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온다. 그러나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인격과 인간관계 둘 다 살린다. 자신의 개인의 감정을 섞지 않고 긍정적인 비판을 도모한 나단은 지혜로운 선지자였다.
‘악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참말은 지어낸 어떤 말도 능가 한다’라고 갈파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이나 나단 선지자의 지혜로운 언행이 폭로의 대가 어산지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