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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건강 - 특이 증세 없는 협심증?

2010-12-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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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일이다. 49세된 남자가 정기검진을 하러 왔었다. 고혈압을 3~4년간 약으로 치료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혈압이 130/80으로 정상이었다.

평상시에는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단지 신경을 많이 쓰면, 왼쪽 가슴이 30초 정도 약간 무겁게 느껴지다가 풀린다고 했다. 얼마나 자주 그 증상이 있었냐고 했더니, 1달에 한두 번 정도로 드물게 있다고 했다.

얼핏 듣기로는 가벼운 협심증 초기처럼 들렸다. 그래서 심전도(EKG)를 찍었더니 정상으로 판독되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 시점에서 더 이상의 심장검사를 하지 않고 협심증에 대한 약물치료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다음 더 길고 비싼 검사가 필요한지 경과를 관찰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 환자는 뭔가 협심증이 대단히 심각할 것이라는 직관(insight)이 왔다. 그래서 환자에게 “협심증 환자들도 가슴 통증이 없는 경우에 심전도에서 정상으로 판독되는 수가 허다하므로 정확한 진단은 운동부하 심전도(Treadmill EKG)와 심장 초음파(echocardiography)를 해 보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환자도 충분히 이해를 해서 심장내과를 소개했다.

심장내과에서 검사한 결과, 운동부하 심전도에서 큰 이상이 없었다. 심장내과 선생님은 환자에게 심도자술 같은 더 이상의 검사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환자가 원하면 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환자가 이번에는 “나에게 심도자술(cardiac catheterization)이 꼭 필요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나의 직관으로는 환자의 심장혈관이 많이 막혔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심도자술에서 심장혈관이 좁아진 것이 발견되면, 수술 없이 풍선(balloon)으로 뚫을 수 있고 만약 이상이 없다면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심근경색 환자의 20~25%는 별로 증세가 없다가 첫 번째 어택(attack)으로 사망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심도자술을 권한다”고 답했다.

환자는 나를 믿고 심도자술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심장의 관상동맥 입구 부분에서 99%가 막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balloon angioplasty’(의학용 풍선으로 심장혈관을 확장시켜 피가 잘 통하게 해 주는 시술법)로 막힌 부위를 뚫을 수 있어서 환자의 심장혈관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날 오후 환자는 나에게 고맙다고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나도 이 환자는 뭔가 심각한 심장질환이 있을 것이라는 직관이 있었기에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었지, 만약 약물치료만 했었더라면, 언제든지 좁아진 부위 99%에서 나머지 1%가 막혀서 환자는 급사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서 보듯이, 의학은 의사의 많은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된 직관력을 요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차민영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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