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환자(1)
2010-12-01 (수)
약 10년 전 일이다. 오후 6시께 퇴근 무렵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장 상사가 아침부터 심하게 체했는데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치료해도 점점 더 명치 부위가 아파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모시고 갈 테니 꼭 기다려 달라고 했다. 30분 후에 그 직장 상사가 왔는데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명치 부위에 손을 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환자의 말은 아침에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명치 부위가 아파오고 점점 심해져서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이고 가끔 구역질도 동반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전혀 효과가 없으니 선생님께 주사나 한 방 맞으러 왔다고 했다.
언뜻 듣기에는 꼭 심한 위경련처럼 들렸다. 그래도 일단 진찰을 하는데 혈압이 160/100이 나왔다. (고혈압이다) 그래서 과거 혈압이 높은 적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5~6년 전부터 혈압이 높았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혈압 약을 복용한 적은 없다고 하였다.
관상동맥 심장병(협심증과 심근경색)의 경우 드물지 않게 명치부위가 아파 온다. 이때 증세가 위경련이나 담석증 또는 급성 췌장염과 매우 흡사하다. 하도 증세가 흡사해서 검사를 하지 않고서는 의사들도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급히 심전도를 찍었더니 아주 심한 협심증을 가진 것으로 판독되었다. 환자에게 이것은 협심증(또는 심근경색)이라고 설명하고 인근 큰 병원의 응급실로 바로 보냈다. 거기서 입원시켜 응급으로 심도자술을 실시한 결과 심장의 관상동맥 4개 중 4개 전부가 거의 막힌 상태로 진단되었다. 밤중에 심장외과 팀이 응급으로 심장관상동맥 ‘Bypass’ 수술을 하여 환자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여기서 보듯이 협심증 때 가슴이 아프지 않고 명치 부위가 아파서 오는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까딱하면 위경련 등의 위장병이나 췌장, 담석증 등으로 잘못 진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의 경험과 직관이 중요하다. 이것이 좋은 의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213)480-7770 차민영<내과 전문의>
■약력
-서울대 의대 졸업
-USC 의대 내과 인턴, 레지던트 수료
-미국 내과 보드전문의
-전 USC 의대 내과 임상조교수
-서울 메디칼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