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미국 영화에서 보면 재판 중 상대방 측에서 예상 못했던 결정적인 증거물을 제출하든지 아니면 예상하지 못했던 증인이 나타나서 결정적인 증언을 함으로써 재판의 승패를 뒤집는 경우가 있다.
영화에서는 불리하게 몰리던 주인공이 극적으로 기사회생하여 재판에서 승리하는 드러매틱한 장면을 연출할 때 관객들은 환호하거나 통쾌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은 영화 속에서나 자주 일어나지 실제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미국 소송법은 서로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물이 무언지 그리고 어떤 증인들이 있는지를 충분히 사전에 알아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를 미국의 법률 용어로는 ‘discovery’(증거 개시-증거를 열어서 보임) 절차라고 칭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들을 우리 측에서 발견하는 절차이다.
만일 중요한 증거물이나 증인의 존재를 상대방이 요구 했는데도 은폐했을 경우에는 그 증거물이나 증인을 재판에서 아예 제외시키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절차의 취지는 서로의 증거물과 증인을 재판 전에 공개함으로써 승소 가능성이 없는 사건은 재판 전에 협상을 통해 해결되는 것을 권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래도 해소될 수 없는 분쟁만을 재판을 통해서 해결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소송사건의 90% 이상이 재판 전에 해결되고 있다.
소송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많은 변호사들이 고소장에 답장을 제출한 후 재판 날(대개 1~2년 후)이 다가올 때까지 속수무책하고 있다가 재판준비가 안 되어 있어 뒤늦게 재판 날짜를 연기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가 없이는 연기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불리한 합의를 하게끔 유도하는 경우가 우리 한인타운에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판사나 배심원을 설득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의뢰인들을 설득하기에 급급하다.
제대로 된 재판준비는 상대방 측이 소유하고 있는 증인과 증거물이 무언지를 미리 ‘증거 개시-증거를 열어서 보임’하여 그걸 반증할 수 있는 증거물과 증인들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본인이 의뢰한 변호사가 선수금을 받고 고소장에 답장을 제출한 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면 변호사 선정이 제대로 되었는지부터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소송과정에서 상대방 측의 증인이나 증거물을 ‘discovery’ 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첫째는 질의서(interrogatories)를 통해서이다. 상대방에게 분쟁에 관련된 상대방 측의 주장, 법적인 근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물이 무엇이며 만일 증인이 있다면 증인의 정체 및 어떤 증언을 할 예정인지까지 이 질의서를 통해 요구할 수 있고 상대방은 정해진 시일 내에 (약 30일 내에) 답을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제일 먼저 시도해야 하는 절차이고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절차이다. 상대방이 제때 답을 안 하든지 답의 내용이 미비할 경우에는 법원의 명령을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둘째는 상대방이 소유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불리한 서류를 찾아내기 위해서 분쟁에 관련된 모든 서류들의 사본(document production)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때에는 요구서류가 현 분쟁과 관련성만 있으면 광범위해도 된다.
소송법은 재판 당시에는 증거물이 분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증면해야만 재판 증거물로 채택될 수 있지만 이런 ‘discovery’ 과정에는 더 광범위한 요구가 허용된다. 그러므로 은행잔고 기록, 연관성 있는 보고서, 계약서, 편지 및 인보이스 등의 사본을 요구할 수 있고 상대방은 그것에 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셋째는 원고와 피고는 물론이고 현 분쟁에 대하여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제 3자마저도 (증인으로 채택되기 전에도) 변호사 사무실로 출두하게 하여 상대방 변호사의 입회하에 질문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영어로는 deposition이라고 하며 한국어로는 선서증언이라고 일컫는다. 위증을 안 하겠다고 법원에서 임명한 속기사 앞에서 선서를 하고 하는 증언이라서 그렇게 불린다. (213)480-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