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
2010-05-12 (수)
이승만 대통령은 근대 한국 역사 속의 진정한 독립투사였다. 우리가 그분이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조명해주는 것은 당연한 예의며 도리다. 그분은 일본 침략으로부터 한국의 주권쟁취와 독립운동을 위해 젊은 시절을 미국에서 불태웠다. 이승만 박사는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한국을 폭격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워싱턴의 백악관에 전했다. 미 공군은 일본영토에 폭격하면서도 한국영토에는 폭격하지 않았다.
드디어 1945년 해방이 되어서야 70세를 넘긴 노 혁명가는 그리웠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정치 격동기인 1960년 4월19일 격앙된 학생혁명은 풍운아 이승만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다시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이날 필자도 동료 학생들과 함께 서울역 남대문 경찰서 앞과 세종로 중앙청 앞 도로에서 ‘이승만 독재 물러가라!’는 외침 대열 속에 들어 있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남산에 세워진 이 대통령 동상을 끌어내려 세종로 일대를 끌고 다녔다. 4월에 데모 학생 희생 수는 150명이 넘었다. 절정에 오른 4월19일의 학생, 시민 데모는 이승만 독재권력이 막을 고하는 최후의 날이었다.
4월26일 노(老) 대통령은 조국을 뒤에 남기고 다시 미국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한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유일한 분인데 초라한 망명길은 한국 근대 정치사의 비극으로서 지금까지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 한국역사의 슬픔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누구들처럼 비자금도 부정축재도 숨겨둔 재산 없이 빈손으로 하와이에서 외롭게 살다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노 정치가는 자유당 독재권력의 희생양(Scape goat)으로서 한국 국민들께 죄를 많이진 분이다. 그 분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데 말이다. 한 가지 자유당 권력의 부조리 장막 속에 묻혀버린 정치실패는 이승만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겨버린 유산이라는데 매우 역사적 비극이다.
그러나 그분은 해방 후 무질서한 사회 격동기 속에서 한국 독립과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시켰다. 시장경제체제 기초를 다져놓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역사 인물들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유독 건국 대통령 이승만 동상은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독립투쟁 혁명가였다. 그분은 재미교포 1세대 워싱턴 교포다. 그런 의미에서 미주한인회총연합회나 워싱턴 지역 한인회, 뜻 있는 교회, 교포들이 동상건립 기금을 모금했으면 하는 기대다.
이명박 대통령께 부탁도 해보자. 뜻 있는 한국 국민들께도 호소해보자. 워싱턴 교포사회가 앞에 서서 동상 건립사업의 추진 필요성을 한국에 알리자.
1960년 4월19일 서울 남산에서 끌어내린 그 자리에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을 다시 세워드리자. 이승만 대통령을 다 같이 용서해 드리자. 워싱턴 교포들이 건립에 자원 봉사하며 역할을 주도한다면 참으로 뜻이 있을 것 같다.
고근필
전 페닌슐라 한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