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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칼럼/탁월한 코칭 리더가 되라(24)계승의 원리

2010-04-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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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코칭 리더가 되는 24번째 요건은 “계승의 원리”다. “계승의 원리”란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 나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웃과 후손에게까지 광범하게 미치도록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우과청천(雨過靑天)의 우아한 색깔로 유명한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한국이 세계에 내놓고 두고두고 자랑 할 수 있는 세계적 명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것들이 중간에 명맥이 끊어지게 된 데에는 계승의 원리를 경시했던 선조들의 실수 때문이었다. 왜 이런 실수가 생겼을까. 첫째, 우리의 조상들은 산속에 들어가 도자기 굽는 일을 낮고 천한 직업으로 알았고, 도공의 삶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자기 굽는 비법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이 후손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도공들은 자신이 죽으면서 모든 도예의 비법도 함께 무덤으로 가져가 묻어 버렸다. 때문에 우리나라엔 아직까지 도자기를 만드는 일체의 문헌이나 매뉴얼은 남아있지 않고 도공의 명맥은 끊어졌다.

둘째, 내일을 내다보는 꿈과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가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꿈과 비전이다. 꿈과 비전이 없으면 어떤 민족도 공동체도 폐쇄적이 되고 정체성을 잃고 만다. 조선의 도공들은 보다 나은 내일을 창조하는 꿈과 비전이 없었다. 그래서 도자기의 명맥이 후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졌다. 반면에 도자기의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약 300년 이상이나 짧았던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은 한국의 도자기를 탐내어 일으킨 7년 임진왜란 기간 동안에 조선 전역을 샅샅이 뒤져서 도공이란 도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붙잡아갔는데, 이때에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강제로 붙잡아간 조선의 도공들을 한 군데로 모아 특별한 군락을 이루어 살게 하였고, 명장계승제도를 만들어 놓고 도자기명장의 대를 잇게 하였다. 이와 같은 계승정책을 통하여서 일본은 조선에서 훔쳐간 우수한 도자기 제조기술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전략에 성공하게 된다. 그 결과로 일본은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그들이 오랫동안 꿈꾸던 도자기 선진국으로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얄밉고 배 아픈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계승의 법칙”이다.

누가 위대한 리더이며. 어떤 민족이 과연 위대한 민족인가. 계승에 대한 깊은 안목과 비전을 가진 민족이다. 이순신이 왜 한국 사람뿐 아니라 일본사람에게까지 영웅인가. “난중일기(亂中日記)”때문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절망과 위기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당파싸움 때문에 조정이 휘청거리고 있는 와중에도 부패한 정치 현실에 물들지 않고, 민족의 내일을 바라보고 승리와 희망과 비전을 품은 난중일기를 써놓아 후대에 계승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사람들은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벌벌 떤다.

계승의 원리를 무시하는 민족은 퇴보하고, 계승의 원리를 숭상하는 민족은 언제나 진보하고 성장한다. 미국에 이민으로 들어 온 민족 중에 유대인만큼 성공한 민족이 없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 25% 이상이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차지한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바로 계승의 원리 때문이다. 유능한 유대인 학생이 대학에 들어오면 노벨상 수상 경험이 있는 유대인 교수가 그를 불러 자기 제자로 삼고 키워준다. 자신의 학문적 노하우(know-how)와 노윗치(know-which)를 다 전수해 주고 은퇴한다. 그러니 다른 나라 학생들이 유대인을 따라 갈 재간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어떤가. 우리는 너무 생각이 좁고 자기중심적이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자기 밥그릇만 생각 한다. 자기생존전략에만 눈이 어둡다. 계승의 원리를 무시하고 살아간다. 좀 똑똑한 제자나 후배가 나타나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고사가 자신의 현실이 될까봐 벌벌 떤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에 나타난 하나님을 언제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아브라함에게만 주시는 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에게 널리 미쳐야 하는 계승의 복이기 때문에 그렇다.

잊지 말라. 과거와 현제와 미래를 이어줄 축복의 계승자가 끊어지면 가정이건 사회이건 민족이건 정체되고 퇴보한다. 이건 성경과 인류역사의 증언이며 엄숙한 교훈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타날 미래의 선진국은 계승의 법칙에 충실한 민족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 갈 리더는 계승의 법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자의 몫이 될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묻는다. 그대는 후대에 계승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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