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로망’피노 누아로 사랑고백

2010-02-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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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와인으로 분위기 낼까

오로지 사랑만을 위한 날이라면 무엇을 먹은들 무엇을 마신들 맛있지 않으랴. 님과 함께라면 비 내리는 처마 밑에 앉아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신다 해도 우리의 오감은 행복과 환희에 떨 것이다. 이런 날은 손에 잡히는 모든 와인이 다 연인을 위한 와인이라고 해도 좋다. 샴페인을 마시며 사랑을 축하해도 좋고, 디저트 와인을 마시며 달콤한 입술을 나누어도 좋고, 보졸레 누보의 신선함에 취해 풋사랑의 어설픔을 달래도 좋을 것이다.

부드럽게 숙성한 카버네 소비뇽은 또 얼마나 우아한가. 핑크빛의 로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이다. 그러나,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정말 살 떨리게 애틋한 연인들을 위해서라면 ‘피노 누아’(Pinot Noir)를 권해야 할 것이다.

꽃처럼 향기롭고 깃털처럼 가벼우며 보석 처럼 투명하고 소녀처럼 여리고 섬세한 피노 누아, 어쩌면 그것을 ‘연인의 숨결’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영화 ‘사이드웨이즈’(Sideways 2004)에서 주인공은 피노 누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껍질이 얇고 변덕스럽고 일찍 익어버리지. 카버네처럼 그냥 놔둬도 어디서나 잘 자라는 생존자가 아니야. 누군가 시간을 들여 그 잠재력을 진실로 이해했을 때만 피노는 충만하게 표현하고 피어나거든. 그리고 그럴 때의 그 맛은 가장 빛나고 인상적이며 부드럽고 스릴 있는 와인이 되는 거야” 독점적인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외로운 영혼, 까다롭고 예민한 애인과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그 신비로움이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아주 특별한 와인이 바로 피노 누아다.

피노 누아는 적포도주 중에서 가장 가벼운 와인으로 색깔과 향이 연하고 맛이 경쾌하다. 떫은 태닌이 적고 베리와 체리 등 과일향이 풍부하며 그 가운데 버섯향과 흙냄새가 나고 캘리포니아 산 와인에서는 약간의 커피와 모카 향도 맡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샌타바바라, 파소 로블스, 나파 밸리, 소노마 카운티 등지에서 고루 재배되지만 가장 좋은 산지는 소노마 카운티와 오리건주의 윌라멧 밸리다. 프랑스에서는 부르고뉴 산 레드 와인이 100%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으로 그 유명한 로마네 콩티가 바로 피노 누아인 것이다. 피노 누아는 가벼운 레드 와인인 만큼 음식과 어울리는 폭이 매우 넓다.

백포도주와 어울리는 음식, 적포도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거의 대부분 다 소화해 내기 때문에 쇠고기, 닭고기, 생선요리, 파스타, 피자, 샐러드 등 거의 모든 음식과 무난하게 매치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와인들은 한두 가지 빼놓고는 일반 와인샵이나 수퍼마켓, 코스코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레이블이다.


꽃처럼 향기롭고 깃털처럼 가볍고
보석처럼 투명하고 소녀처럼 여린
그 잠재력을 이해할 때만 피어나는…

▲Williams Selyem, Russian River Valley


소노마 카운티에 위치한 윌리엄스 셀리엄의 피노 누아는 가격도 비싸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아 거의 컬트 와인 급에 속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산 피노 누아 중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투명한 루비 빛깔이 너무나 아름답고 꽃향기와 자두향기가 섬세한 맛을 내면서 밸런스가 훌륭하고 기품있는, 깨끗한 뒷맛이 특히 인상적이다.
80달러 & Up.


▲Flowers, Sonoma Coast

플라워스는 북가주 소노마 카운티에 있는 와이너리로, 꽃처럼 예쁘고 맛있는 피노 누아를 만든다. 자두와 체리, 각종 베리의 잘 익은 과일향과 깨끗한 산도, 미디엄 바디의 몸체가 아주 사이좋게 조화를 이뤄 깨끗하고 밝은 맛을 낸다. 45달러 정도.


▲J, Russian River Valley

J라는 알파벳 한 글자 이름이 특이한 이 와인은 깨끗하고 섬세하고 향기로우며 우아하다. 부르고뉴 스타일로 만들어진 와인으로 딸기와 체리, 래즈베리 등 여러 복합적인 과일향을 포함하면서 오크통 발효와 숙성에서 얻어진 바닐라, 후추, 콜라 등의 터치, 그리고 풍요로운 소노마 카운티의 토양이 내어준 부드럽고 우아한 흙맛이 팔레트를 감전시킨다. 25달러.


▲Sanford, Santa Rita Hills

샌포드 와이너리는 영화 ‘사이드웨이즈’에 등장하여 그 특수를 가장 많이 누린 와이너리다. 샌타 리타 힐스 포도원에서 나온 피노 누아는 과일향이 적극적으로 튀어나오면서 뒷맛이 깨끗해 그냥 마셔도 맛있고 여러 음식들과도 잘 어울린다. 다양한 베리 맛이 밝은 산도, 약간의 태닌과 함께 예쁜 균형을 이루고 있다.
30달러 정도.


▲Artesa, Carneros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를 잇는 지역인 카네로스는 선선한 날씨 덕에 품질 좋은 피노 누아와 샤도네가 재배되는데 아테사의 피노 누아는 특히 향기롭고 우아하다. 체리 향과 스파이스, 스모키 오크 플레이버가 균형잡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가격에 비해 화려한 맛을 보여준다.
25달러 선.


■맛있는 피노 누아 레이블

A to Z 에이투지/ Acacia 아카시아/ La Crema 라 크레마/ Byron 바이런/ Au Bon Climat 오 봉 클리마/ Saintsbury 세인츠베리/ Cline 클라인/ Etude 에튀드/ Gary Ferrel 개리 퍼렐/ Robert Mondavi 로버트 몬다비/ Castle Rock 캐슬 락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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