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온리 지역에서 잔직 경찰관을 살해하고 한국으로 도주해 ‘한미범인인도협정’을 체결하게 한 남대현(32, 남 전 렌스데일 거주)씨에 대한 재판이 26일 필라 시청의 법정에서 열렸다.
남씨는 1996년 8월 16일 당시 새벽 3시 경 공범 3명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전직 경찰이었던 안토니 슈레이더씨를 라이플로 살해한 혐의로 이날 법정에 섰다. 남씨는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깔끔한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으며 얼굴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날 검찰은 슈레이더씨의 거실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흑백사진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재판을 시작하였다.검찰은 당시 19살이었던 남씨가 14살이었던 다른 3명의 공범과 함께 슈레이더씨의 집을 침입했으며 포치에 서있던 슈레이더씨를 남씨가 22 칼리버 라이플로 살해했다고 설명했다. 필라델피아 검찰청 검사보인 마크 길슨은 남씨와 공범 3명은 당시 클릭이라는 갱단의 일원이었다고 밝혔다.
남씨의 변호인인 마이클 월레이스는 “진짜 살해범은 범인 중의 한사람인 로버트 서바나봉 일수 있다”며 “이 살해 사건은 처음부터 서바나봉의 집 지하실에서 계획되었으며 서바나봉은 남이 총을 쏜 순간에 포치에 있었고 그 혼자 다시 슈나이더씨의 집에 돈을 찾기 위해 돌아와 돈 대신 슈나이더씨의 권총을 훔쳐 그 권총으로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슈나이더씨의 얼굴을 가격했다”고 밝히며 서바나봉이 진범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월레이스는 “이 사건의 처음과 시작에 서바나봉이 있다”며 진짜 살해범은 서바나봉이라고 주장했다.
남씨와 함께 범행에 가담했던 서바나봉과 루이스 파다랄리, 볼라 맨 등 3명의 범인은 2002년 5년의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 있는 상태다. 남씨는 사건 직후 검거되어 10만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되어 남씨의 부모가 집을 담보로 보석금
을 만들어 풀려나왔다. 남씨 석방 후에도 발목에 전자감시기를 차고 가택연금을 조건으로 풀려나왔으나 미국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사형까지 가능하다는 염려 때문에 1998년 3월 한국으로 도피했다. 남씨는 그 후 경주에서 한국 경찰에 검거되었으나 한미범인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풀려났고 이는 한미범인인도협정이 체결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된 바 있다.
남씨의 범인 인도가 거부된 뒤 린 아브라함 전 필라 검사장이 제시 헬름즈 상원의원과 타계한 톰 포글리에 하원의원을 동원하여 결국 1999년 12월 한미범죄인도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후 남씨는 한국에서 10년 간 도피생활을 계속하였으며 도피 중 결혼도 하여 현재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필라 검찰청은 조약 체결 후 남씨의 검거를 위해 연방수사요원과 필라 검찰청 요원을 한국에 급파하여 한국과 합동수사팀을 구성하여 남씨 체포에 전력을 기울인 끝에 2008년 3월 경기도 광주에서 남씨를 체포하여 미국으로 송환했다.
남씨는 도피 중 한국의 학원에서 영어강사 등을 하며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남씨는 자신이 도피 중에 자신에게 모든 혐의가 뒤집어 씌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앞으로 공범들과의 역할 관계에 따른 주범 논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10년의 도망자 생활 끝에 재판정에 선 남대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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